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비참한 행동이다. 살육과 파괴 속에 국가가 망하기도 하고 수많은 개인이 행복을 잃어버린다. 가족이 누리던 평화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비극이 승전과 패전의 역사에 묻혀서 잊혀진다. 그런 중에도 사라지지 않는 고귀한 전설들이 있다. 다름아닌 우리 어머니들이 남긴 이야기들이다. 전선에서 남성들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는 동안 어머니들은 가정을 지키는 싸움에 엄청난 힘과 지혜를 쏟아낸다. 그 어머니들 덕에 우리가 살아남아서 국가를 다시 세우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
6.25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1912년생인 내 어머니는 전쟁이 났을 때 38세 홀몸으로 3남2녀를 키우고 계셨다. 피난 중 9.28 수복이 되자 어머니는 서울 집에 남겨둔 세간살이 중 값나가는 것들을 고향으로 옮겨오고자 단신 서울로 올라가셨다. 얼마 후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가 뒤집혀 1.4후퇴를 맞게 되는데 서울에 간 어머니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고 우리는 밤낮으로 울면서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어머니가 집 앞에 나타나셨다.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에 쪽진 머리는 헝클어졌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을 어찌 잊으랴. 어머니는 큼직한 고리짝 두어 개에 귀한 물건들을 담아 오셨는데 그 혼란 중에 여자의 몸으로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서울서 부산으로, 다시 목포를 거쳐 강진까지 운반해 오셨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전후의 역경 속에 홀몸으로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고 한 어머니의 공덕은 어떤 위대한 여성지도자의 사역과도 견줄 수 있지만 또한 이 땅의 수백만 어머니들이 다같이 공유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과연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고, 그 정점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가 있다. 어머니들의 힘은 자식의 능력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데에서도 발견된다. 예수의 신성(神性)을 아는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잔치에 아들로 하여금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손님들을 대접할 수 있도록 종용하여 구세주 사역의 단초를 열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첫째로 전쟁 후의 곤핍한 속에서 절약하고 짜내서 자식들을 가르쳤다. 20세기 대한민국이 아시아 여타 국가들과 다른 발전의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어머니들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전통문화 속에서 누적된 한을 전후의 새 시대를 맞은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성공으로 풀었다. 그들의 교육열이 자식들을 산업전사로, 과학자로, 예술가로, 군인으로, 법률가로, 의사로 키워 국가 성장 속도의 차별화를 가져왔다. 그렇게 20세기를 지내오면서 자신들은 의식하건 말건 우리 어머니들은 성모 마리아의 그림자를 따랐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어머니들은 그런 성스러운 자태로 살아 계신다.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인데 우리 어머니의 상(像)은 다음,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내 학교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잘사는 친척집을 찾아가시던 어머니의 힘든 발걸음을 우리는 잊지 못하는데 그런 기억이 없는 후대들이 오직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할까 지금 우리는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대한 모성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의 바탕에서 선한 것을 향한 성취욕을 이끌어 낸다. 6.25의 시련은 이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 복된 기회였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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