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사명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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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는 50만 종류의 식물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식물 중 쓸모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야생종자 전문가인 고려대 강병화 교수는 “세상에는 잡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식물은 나름대로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잡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이 꼭 있어야 할 풀입니다.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한낱 미물도 그러할진대 주님의 사람인 크리스천에게는 더 큰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주신 명령이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내가 고안해내고 명상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이요,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결박하기 위해 가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때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 달려갔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표였으며, 사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은혜의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은혜의 복음이란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종으로 끌려가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인간을 구하기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를 보내시고 내가 당할 벌을 대신한 고귀한 희생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의 복음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인간 편에서는 은혜로 받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희생입니다. 우리는 거저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바울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기도합시다. 그래서 그 사명을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명에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거룩한 사명이 바울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사명임을 알고 거룩한 목표를 향해 일평생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성도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늘어나고 교회 출석 성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숫자의 감소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성도들의 영적성장의 둔화가 문제입니다. 성도들조차 하나님의 일에 무관하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성도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때보다 잘먹고 잘사는 시대입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 10위권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정도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큰 성장을 이룬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배부르고 살기 편한 세상에 살면서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모이기에 힘쓰고 더 많이 기도해야 되고 더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명감을 잃어버린 까닭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피 흘림 위에 세운 교회입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눈물과 헌신으로 세운 교회입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찬송과 기도가 울려퍼져야 됩니다. 그런데 세워진 교회 안에서조차 기도소리가 끊어지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와 오후 찬양예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목회자들조차 사명이 아닌 직업의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직업의식이라도 투철하면 다행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살아갑니다.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목회자가 변해야 됩니다. 주님 앞에 부름받고 사명자의 길을 가겠노라고 결단하던 그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찬송을 부르며 다짐했던 기억은 어디로 사라지고 여유만만한 한량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떼들이 굶주리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회들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득합니다. 교회 안에서 생각과 방식의 차이로 갈등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미스바 영적대각성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열기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강단 위에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 회개의 운동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각성하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정신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구원의 은혜를 아는 성도라면 내 탓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입니다.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고 사명자의 길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명자를 찾고 계십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대답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모세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나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받은 달란트가 작아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도형 목사

<주덕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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