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면, 성도들의 허드렛일까지 도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언제나 작업복 차림의 남루한 차림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좋게 보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목회자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도 된다. 너무 깔끔떨어서 마을 주민들과 이질감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을 방치해 버리면 안 된다. 두발 상태는 덥수룩해지고 제때 손톱을 깎지 못하고, 노상 흙을 만지고 일을 하다 보면 손도 거칠어져서 악수하는 것도 꺼려질 때가 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경우에는 신발도 제때 사 신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 이웃 교회 바자회에 가서 구색을 갖춰서 한 벌 짝을 맞춰 입는 것이 전부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흐르고, 허리도 꾸부정해지고 만다.
필자는 목회자와 교회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 걸음걸이와 외모에 늘 신경을 썼다. 학교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없는 돈에 해마다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학생상담자원봉사자 경상남도협의회 회장을 4년간 역임하기도 했다. 경남기독문인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문화에 기독교 문화를 접목시키는 일에도 일조했다. 지역신문에 칼럼을 쓰는 일은 목회자로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주간함양신문이나 농어촌목회자신문을 비롯해서 크리스천경남신문에 15년 이상 매주 칼럼을 쓰고 있는 것도 목회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일이었다.
2001년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설교 동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해 왔는데, 덕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에도 필자는 비대면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농어촌교회일수록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값비싼 방송장비가 없어도 핸드폰 하나로 얼마든지 농어촌교회 목회현장의 모습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가 있다.
필자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라이브 방송을 함으로써 불신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아침 시간에는 ‘오늘 집을 나서기 전’, 낮에는 ‘산청시인의 행복이야기’, 밤에는 ‘별 하나, 나 하나’를 방송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CCM을 방송하고, 필자가 쓴 성경인물 칼럼을 읽어주기도 했다. 일기 예보는 기본이고, 실시간으로 기도도 해 주었다. 특별히 불신자들을 위한 ‘노래 듣고 歌謠’라는 프로그램은 불신자들과 대화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선교는 접촉점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필자는 ‘각설이가 만난 예수’라는 제목으로 각 지역을 순회하며 품바공연을 했다. 목사가 품바 공연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 평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웃고 떠드는 동안 전해야 할 복음의 메시지는 빠지지 않았다. 노인시설이나 각 마을의 경로당을 찾아 공연을 했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교도소에서 공연을 할 때도 많았다. 물론 대부분은 교회 전도집회나 노인대학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 판소리를 흉내낸 우리가락 구연설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마다 각각의 달란트를 주셨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있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달란트는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조한우 목사
<형곡반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