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한국전쟁의 은인 ‘위트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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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6.25한국전쟁」의 포성(砲聲)이 이어지던 1952년 11월 27일, 부산역 부근에 큰 불이 났다. 판잣집도 변변히 없어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피난민들은 부산역 인근에 있는 시장 점포가 유일한 잠자리였는데 대화재로 오갈 데가 없게 됐다. 입을 옷도, 먹을 것도 없었다. 이때 위트컴(Richard Whitcomb, 1894~1982) 장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성으로 ‘군수(軍需) 사령관’이었는데 장군은 군법(軍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열어 군용 담요와 군복, 먹을 것 등을 3만여 명의 피난민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미국연방의회 청문회’에 불려갔다.

의원들의 쏟아지는 질책에 장군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미군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이 주둔하는 곳의 주민들한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을 돕고 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입니다. 주둔지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이기더라도 훗날 그 승리의 의미는 퇴색될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오래도록 박수를 치고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군수기지가 있던 곳을 이승만 대통령한테 돌려주면서 “이곳에 반드시 대학을 세워 달라”고 청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부산대학(釜山大學)」이 설립된 배경이다. 그리고 장군은 「메리놀 병원」을 세웠다. 병원기금 마련을 위해 그는 자신이 스스로 ‘갓에 도포를 걸치고’ 이 땅에 기부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장군이 채신머리 없이 왜 저러느냐?”고 쑤군댔지만 장군은 개의치 않고 기금 마련에 그의 온 맘과 힘을 쏟았고 그의 목표는 성취되었다. 

한국전쟁 중에 틈틈이 고아들을 도와온 위트컴 장군은 고아원을 지극정성으로 운영하던 한국인 여성 한묘숙(1927~2017) 여사와 33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위트컴 장군이 ‘한국전쟁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연유(緣由)이다. 장군은 부인에게 유언했다. “내가 죽더라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처 못 데리고 나온 미군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軀)까지 찾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부인 한묘숙 여사는 그 약속을 지켰다. 북한은 장진호 부근에서 형태가 길다란 유골만 나오면 바로 하와이를 거쳐 한묘숙 여사한테로 가져왔고, 한 여사는 유골 한 구당(軀當) 300불씩 꼬박꼬박 지불했다.

한 여사는 한때 간첩누명까지 쓰면서도 굴하지 않고 남편의 유언을 끝까지 지켰다. 장군의 연금과 재산은 모두 이렇게 쓰였고, 장군 부부는 끝내 이 땅에 집 한 채도 소유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장군은 임종에 이르러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미국이 아닌 한국에 묻어 달라(I want to be buried in South Korea, not America.)” UN공원에 묻혀있는 유일한 장군출신 참전용사가 바로 위트컴 장군이고 끝까지 그의 유언을 실현한 부인 한묘숙씨도 그곳에 장군과 합장되어 있다.

이 땅에는 이런 장군의 동상 하나가 없었다. 그런데 2022년 11월 17일, 장군이 떠난 지 꼭 40년 만에 뜻있는 분들이 모여 위트컴 장군의 조형물을 만들기로 결의했고 이윽고 2023년 11월 13일, 1만 8천여 명의 부산시민의 성금으로 조형물이 완성되어 공개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국가예산이 아니고, 재벌들의 주머니를 털지도 않고, 70여 년 전, 수혜(受惠)를 입었던 피난민이 중심이 되어 ‘위트컴 장군’의 조형물이 제작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70여 년 전, 한국전쟁의 고아들을 살뜰하게 살폈고 「메리놀 병원」을 세워서 병들고 아픈 이들을 어루만졌으며 또 대학을 세워 이 땅에 지식인을 키우려던 장군의 철학은 존중,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부하의 유골 하나라도 끝까지 송환하려고 했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반가움과 고마움이 솟구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트컴 장군에게 국가보훈처를 통해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 훈장’을 추서(追敍)하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으나 다행스런 일이다. 

이 글은 동국대 박선영 교수가 페이스북에 발표한 글을 부분적으로 보완한 내용이다. 박 교수는 이렇게 글을 끝맺고 있다. “정말 기쁜 날이다. 팝콘이 탁탁 터지듯이 내 온 몸의 세포들이 기쁨에 겨워 꿈틀거린다. 이제 나는 죽어서도 한묘숙 여사를 만나 웃으면서 두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위트컴 장군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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