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0~37)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대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답하신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네 이웃의 고난을 모른 체 하지 말고 힘써 도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교회학교에서도 이 본문을 가르치며 주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순수한 어린 영혼들은 친구가 다치면 상처를 돌봐주고 어른을 불러오는 등 그 가르침을 온전히 수행합니다.
그런데 어린이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모범이 되고 있을까요? 예전 어른들은 품앗이나 두레 등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상황이 좋지 않은 공동체 구성원 또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게 순번을 먼저 부여하는 등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신경을 썼습니다. 오죽하면 ‘옆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도 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점점 더 개인주의가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아파트에서는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아파트 주민 10명 중 9명이 모른다고 답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고독사 비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사랑하기보다는 의심하고 경계하는 풍조가 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반성과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나부터 내 이웃을 신경 쓰고 오며 가며 마주치면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나아가 아픈 과거에 의해 분단이 됐고, 지금도 숱한 대남도발로 인해 뉴스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저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삼일만 인내하면 삼 년도, 삼십 년도, 나아가 평생도 참아서 마침내 예수님의 삶을 흉내라도 내는 삶 될 줄 믿습니다.
김제원 장로
<전남노회 장로회장, 광주유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