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서원, 그 엄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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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약속과 다짐을 하면서 산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에서 시작해서 부모님께 어떤 다짐을 어려서부터 여러 번 하면서 자란다. 말을 잘 듣겠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이번 시험을 잘 치러서 장학생이 되겠노라는 약속에 이르기까지 학업과 연관된 다짐을 많이 하면서 자란다. 그 약속의 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고 그저 입에 발린 소리로 지나치기도 하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약속은 이룰 수 있을 만큼 하는 게 좋다는 걸 자라면서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큰 시련을 당할 때 서원이라는 것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평소에 하나님과 신실한 마음으로 서원을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환란 속에서 이 고비를 잘 넘게 해 주시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노라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걸고 기도 응답을 간구하는 예가 대부분이 아닌가 한다.

믿음이 깊지 못해서인지 아직 그런 서원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위하는 것을 다 아뢰고 난 후, 하지만 하나님께서 합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인도하시고 제가 순종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절박할수록 또렷이 올리게 되는 기도의 전부였다. 서원은 그 실행이 가능한 것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되기에 못해 보았고 어쩐지 건방진 것 같은 생각에 시도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새벽기도 때 구약을 통독하는데 사사기를 보면서 입다를 만났다. 그의 사려 깊지 못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하나님께 불태워 바치는 구절을 읽으면서 서원의 경건함과 엄중함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입다는 우선 하나님께서 인신제사를 금하신 사실을 간과하고 자신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에서 제일 먼저 환영하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엄청난 서원을 드렸다. 하나님 은혜에 크게 보답하겠다는 생각에 도취해 하나님 말씀도 잊고 인명의 소중함도 잊은 무모한 서원이었던 것이다. (삿 11:31, 34-40) 

오늘도 우리는 무의식중에 입다와 엇비슷한 서원을 남발하는 경우는 없는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급한 김에 과도한 조건을 걸었다가 기도 응답 후에 자의적으로 그 범위를 축소해서 드리는 경우 등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 주님과의 약속은 어떤 것보다 지엄하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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