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전라도가 고향이지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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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족령 내려졌지만 세례받고 ‘임신’ 기쁜 소식

모자가 합세하여 공격을 가할 때는 몇 번이고 양잿물을 먹고 자살하고 싶었지만 성경의 진리를 안 후로는 그러한 마음이 사라지고, 더욱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전주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서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으며,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대로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 7~11).

그런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이상하게도 기도를 많이 하고 오면 더 매질이 심하였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도를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더 열심히 기도하였다. 최마태 선교사는 그녀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으므로 세례 받을 것을 권면했다. 이러한 권유로 유씨 부인은 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만일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어머니와 남편이 알게 되면 얼마나 구박이 심하겠는가. 그때 하나님께서 유씨 부인에게 세미한 음성을 들려 주셨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 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 5: 11~12).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씨 부인에게 성령을 주셔서 강한 마음을 갖게 하셨다. 그리고 세례 문답에 임할 준비도 하게 하셨다. 유씨 부인은 최마태 선교사의 문답에 응하면서 자신의 확고부동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선교사님, 우리 집 남편께서 교회 출석하는 일에 대해서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저에게 금족령을 내렸습니다. 만일 이를 어기는 경우는 모자가 합세해서 제 발목을 끊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최마태 선교사는 고개를 숙이고 유씨 부인을 위해서 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례 문답에 합격을 하고 교회에서 실시하는 성찬예식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유씨 부인에게 그동안 자신이 당한 그 모든 고통스러웠던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주님과 같이 승천하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유씨 부인이 아기를 가졌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후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그렇게 구박을 하던 남편도 유씨 부인의 변화에 신기해 하였다.

“어머님, 집사람의 배가 이상하네요?” “아니, 뭐가 이상하긴 이상해? 네가 잘못 보고 그런 것 아니냐?” “어머님, 틀림없어요. 직접 집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참으로 신기하였다. 아예 아기를 못 낳을 사람으로 여겨졌던 유씨 부인이 뜻하지 않게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주 시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어느 날 문을 잠그고 몇 날을 누워 있더니 아이를 낳을 것 같다는 유씨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시어머니는 해산에 필요한 여러 도구를 준비하고 유씨 부인의 방에 들어왔다. 막 그가 들어가는 순간 문고리를 세차게 세 번 잡아 당기더니 유씨 부인은 옥동자를 낳았다. 그렇게 미워하던 시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기적이 유씨 부인에게 임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어린아이는 잘 자랐으며, 어느 날부터 아빠 엄마를 부르게 되었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웃 동네 나들이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정에 제삿날이 돌아왔다. 부인은 할 수 없이 제사 음식을 마련해 놓고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얘야, 너도 아빠 따라서 제사상에 절을 해야 돼.” “아니, 어떻게 해서 얻은 아들인데 제사상에 절을 하라고 하십니까?”

난데없이 들려오는 부인의 말에 남편이 깜짝 놀라면서 부인에게 주먹질을 했고, 이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 곁으로 다가섰다. 그 후 매년 조상의 제삿날이 돌아올 때마다 유씨 부인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보, 이제는 제사상 음식을 만들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뭐가 어쩌고 어째. 제사상을 안 차려?”

화가 난 남편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부엌에 들어가 부엌칼을 들고 나와 부인의 목에 들이대며 소리를 질렀다.

“찔러 보세요.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제사상 음식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에 놀란 남편은 부엌칼을 슬그머니 갖다 놓고 부인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단호한 각오로 제사상 음식을 거절하고, 그리고 더 열심히 전주교회에 출석하였다.

한편 전주 시내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여자가 하나님을 믿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많은 부인들이 전주교회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예배당을 새로 짓기에 이르렀다. 최의덕 선교사는 여동생과 의논을 하고 남·여를 구별할 수 있도록 기역자(ㄱ) 교회를 신축하였다. 유씨 부인도 너무 감사해서 다른 신도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하였으며, 역시 김창국 어머니나 할머니도 많은 헌금을 하였다. 이제 전주교회는 최의덕 선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회로서 기틀을 잡아 갔으며, 그동안 최의덕 선교사를 많이 도왔던 하위렴 선교사는 군산선교부가 개설되자, 그 곳을 돕기 위해 군산선교부로 옮겨 갔다. 그동안 약국 겸 간이 진료소를 운영해 왔던 하위렴 선교사가 떠날 무렵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는 여성으로서 의사의 자격이 있는 잉골드 선교사를 전주에 파송하였다.

안영로 목사

· 90회 증경총회장

· 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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