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강의료, 두툼한 봉투채 거지에게 준 사연

Google+ LinkedIn Katalk +

장기려(1911-1995) 박사는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부유한 농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평양 기독병원 외과 과장으로 젊은 의사로 명의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6.25때 둘째 아들 장기용의 손을 잡고 월남하여 그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45년을 독신으로 살았다. 장기려 박사는 월남할 때 손을 잡고 넘어온 둘째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복음병원을 설립하여 피난민과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였다. 그리고 1969년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하여 의료보험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상금 2만 달러 전액을 의료사업에 희사하였다. 그의 손자 장여구(54) 박사는 인제대 서울 백병원 외과교수로 의료에 종사하고 있다.  

그가 어느 회사의 초청을 받아 강의를 하였는데 회사에서 수표가 든 봉투를 받았다. 그가 밖으로 나오는데 거지가 나타나 손을 내밀며 도와 달라고 하였다. 이때 장기려 박사는 서슴지 않고 회사에서 받은 봉투를 그대로 몽땅 거지에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거지는 그 봉투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서로 헤어졌다. 거지는 그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고 은행에 갔더니 은행원이 깜짝 놀라면서 “어디서 이런 큰 돈의 수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 거지가 어떤 신사분이 봉투를 주어 보니 수표가 들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수상하여 경찰에 연락하여 추적하니 어느 회사가 장기려 박사에게 강사료로 준 수표임을 알게 되었다. 그 회사는 강사료에 보태어 용돈으로 쓰시라고 큰 금액을 드린 것이다. 그 후 그 수표를 도로 찾아가라는 연락이 장기려 박사에게 전해졌다. 그 돈을 찾으러 가는 며느리에게 당부하기를 “네가 그 돈을 찾아서 한 푼도 남김없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돈을 네가 가지고 사용하면 너는 내 며느리가 아니다”라고 엄하게 일러 주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으며 그는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