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고발이 있다. 미국 보스톤에 사는 한 부부가 호숫가로 휴가를 갔다. 낚시광인 남편이 배를 타고 새벽 낚시를 나갔다가 들어와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부인이 혼자 보트를 타고 호수 가운데까지 나가서 닻을 내리고 시원한 호수 바람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경찰 보트가 순찰하다가 부인이 탄 보트에 다가와 검문을 했다.
“부인,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요.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예, 이 지역은 낚시 금지구역이라 벌금을 내셔야겠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낚시도 하고 있지 않은데 벌금을 왜 낸단 말입니까?” “현장에서 낚시하고 있지 않더라도, 배에 낚시도구를 완전히 갖추고 금지구역 내에 정박하고 있는 것은 벌금 사유에 해당합니다.”
황당했다. “그래요? 그럼 나는 당신을 강간죄로 고발하겠습니다.” “아니, 부인. 난 부인에게 손도 댄 적이 없는데 강간이라니요?” “당신은 강간 도구를 완전히 갖추고 나와 근접 거리에 가까이 있잖습니까? 당신은 강간 미수범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참 코믹한 죄목이 있다. ‘묵시적 뇌물죄’ 이다. 묵시적 부정청탁이라고 해서 2심 판결을 완전히 뒤엎고 정치재판으로 2심으로 다시 파기 환송한 일이 있었다. 법률의 최고의 보루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법원이 내린 결론이다. 법은 최후의 보루인데 대법원마저 사회적 신뢰 자산을 무너뜨렸기에 할 말이 없다. 법은 최후 보루인데 그마저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묵시적 뇌물죄’, ‘묵시적 청탁’ 내 평생에 처음 들어보는 용어여서 얼른 이해되거나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묵시적’ 참 애매모호하고 희한한 죄목이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이 그 죄목으로 영어의 몸으로 갇혔었다. 재벌 총수가 ‘묵시적 청탁’ 죄목으로 구속되고 수감됐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근간에 ‘미투’ 문제에 연루돼 정상급 지도자들이 참혹하게 몰락하는 것을 보았다. 정치계와 문화계의 거물급들이다. 이들은 확실하게 미투 행위를 행했다. 명시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묵시적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아니었다. 사내들에게 내장된 성충동 본능의 회로는 일단 시동이 걸리면 제어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 성적, 생리적 욕구는 남자들의 강점이고 자연스러운 발로이다. 그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재앙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간음한 자라 했다. 지구상의 모든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도 이 계명에서 자유로울 자 없다. 뭇 남성들의 머릿속에는 복수의 여인들이 있다. 아내와 또 다른 여인들이 어른거린다. 남자들의 성욕은 죽어서 땅속에 묻혀 3년이 지나야 그 생각이 사라진다는 말도 있다. 생리적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종족번식과 생육번성을 위해 창조주가 주신 선물이다. 그런데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에게는 질서와 규범과 틀과 순리가 있어야하는 것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지근거리에서 수 많은 여인들을 만난 일이 있다. 서두에 인용된 황당한 사례나 대한민국 대법원의 묵시적 죄목을 적용한다면 나는 몇 년이나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까? 장기수일까? 아니면 종신형을 받아야 할까? 이 땅에서 ‘묵시적 성희롱’죄가 적용된다면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다. 이로부터 자유로운 남자 그 누가 있으랴?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