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인도네시아에 동인도회사 세운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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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복음 전파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

2024년에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수교 51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전 세계에서 한류 열풍이 가장 거센 나라가 인도네시아인데, 선교사들도 한글 교육과 문화 탐방을 내세워서 인도네시아 선교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한류 바람을 타고 인도네시아에 선교하려는 것은 과거에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워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지배하려던 것과 유사한데, 그 모델이 바로 일제보다 앞서서 네덜란드가 행했던 방식이다.

1595년부터 네덜란드의 선단들은 향신료 무역을 위하여 인도네시아를 왕복하면서 커다란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선박으로 오가는데 2~3년 이상이 걸리고 아주 위험한 항해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네덜란드 정부는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이 지역의 경제 가치를 인정한 네덜란드 정부는 귀족들이 운영하던 모든 무역회사를 통합하여 1602년 동인도회사(VOC)를 세워서 향료 무역의 전권을 장악하였으며, 그 이후 인도네시아 군도의 심장부인 자바에 바타비아(Batavia)를 건설하였는데, 이곳을 포르투갈과 다르게 식민시대의 힘의 근원지로서 만들었다. 이러한 세력을 근거로 하여 향료 무역 득점과 350년간의 인도네시아 전역에 대한 장기 식민통치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네덜란드는 말라카 왕국의 정복과 동인도회사의 설립을 통해 네덜란드 국내의 결속과 강력한 총독제도를 바탕으로 한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사불란한 무역통치의 결과, 그리고 쿤 총독의 무역정책과 바타비아 건설의 결과가 네덜란드에 향로 무역 독점과 350년간 장기 식민통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의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하며 그들의 지휘를 확고히 하기 위해 1610년에 공식적으로 총독직을 두었다. 네덜란드는 그 지역의 해상권까지 장악하였으나 18세기 중반에 들어서 동인도회사는 점차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타비아의 건설이 동인도회사의 재정적 쇠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네덜란드는 1780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 아시아에서 향료 무역 독점권을 포기하는 파리 협정에 서명하게 된다. 그리고 1799년에는 재정 악화를 지속하던 동인도회사가 공식적으로 폐쇄 선고를 하였다.

인도네시아 기독교 역사는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것과 함께 시작되었다. 1605년에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추방하고 로마 천주교인 3만 명을 기독교로 집단적으로 개종시킨 후 18세기 화란교회는 암본에서 2만 7천 명, 미나하사와 산기르에서 1만 2천 명 등 4만 3천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동인도회사의 핵심 구성원들은 물질을 숭배하고 영혼 구원에는 무관심한 자유파 기독교인들로서 해외선교에 악영향을 끼친 문제점이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여전히 작용한다. 동인도회사는 1656년 개혁파가 제출한 자바섬 선교를 제안했으나 세수를 염려하여 거부하는 등 물질주의에 치중하였다. 동인도회사는 기업이 교회의 영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는 동인도회사의 보호 아래 성장하려고 했다. 이 점에서 한국 선교사가 한류를 이용해서 인도네시아에 선교하는 정책은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 선교는 예수 이름을 전하고, 예수께서 복음서를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목적이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은퇴교수,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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