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교회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했다. 연세 드신 교인이 많았지만 여기저기 젊은 청년들 얼굴도 여럿 보였다. 모두 간절한 모습으로 예배하고 있었지만, 앞자리의 세 청년의 예배 자세는 남달랐다. 열심히 찬양하고, 집중해서 말씀을 듣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 청년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예쁜 청년들이 나중 우리 신대원에 왔으면 좋겠다…’ 좋은 젊은이를 볼 때 발동하는 소위 ‘총장 욕심’이었다. 그날 말씀을 전하면서 살아온 날이 모두 은혜로 된 것임을 새롭게 고백하면서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눈물로 설교하고 있을 때 우연히 보니 그 청년들도 따라 울고 있었다. 육십 넘게 인생을 산 나야 긴 세월 살아오면서 받은 은혜가 크고, 거기 서 있음이 모두 은혜로 된 일이라 눈물이 나온 것이지만 저 청년들을 울게 만든 은혜 스토리는 무엇이었을까?
예배를 마친 후 목양실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면서 다음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청년부 담당 부목사님이 청년 몇 사람이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지 물어왔다.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바로 그 청년들이 들어왔다. 오늘 예배 드리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고 말했더니 감사하다며 한 청년이 자기들 소개를 했다. “저희 두 사람은 장신대 신학과 1학년이구요, 여기는 제 언니인데 신학과 2학년이에요…” 아, 자랑스러운 우리 장신대 학생들이었다. 그날 예배는 그냥 기쁘고, 돌아오는 걸음이 그렇게 행복했다.
작년 봄학기부터 장신대에는 자발적 기도운동이 일어나 세 학기째 이어지고 있다. 채플 후 미스바 광장에 7~80여 명이 매일 모여 기도회를 갖는데, 방학 중에도 매일 정오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저녁에 모여 기도하는데, 지난 5월 말 저녁기도 모임에는 6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하여 3시간 넘게 뜨거운 찬양과 기도로 이어갔다. 몇 지역교회 청년회도 함께 했고, 6개 지역 신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함께하여 더 뜻깊은 기도회였다. 일주일 후, 5개 교회(새문안, 소망, 영락, 주안, 한소망교회) 청년들이 연합청년기도회를 가졌고, 1천여 명이 참석해 새벽 2시까지 기도회를 이어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절로 그 외침이 터져나왔다. “아,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비느하스 세대’가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사무엘상 앞부분엔 실패하고 ‘무너진 비느하스’ 이야기도 나오지만(삼상 1-2장), 민수기 25장에는 다시 민족과 교회를 세우는 ‘다른 비느하스’ 이야기도 나온다. 광야 40년이 지나가는 때, 싯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를 자행하며 깊은 영적 타락의 늪에 빠져든다. 그때 거룩한 분노로 분연히 일어선 사람이 제사장 비느하스였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 25:11).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어선 비느하스….
50년 전, 이 땅에도 ‘비느하스 세대’가 벌떡 일어섰다. 함께 모여 기도와 찬양으로 하늘 보좌를 울렸고, 주시는 말씀으로 가슴을 채웠으며, 눈물의 기도로 결단하며 분연히 일어나 달려 나가 하늘 향해 트럼펫을 불었다. 그들이 나아가는 곳에 부흥의 파도가 일어났고, 주의 교회가 힘있게 세워졌다. 전국장로연합회 수련회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우리는 이 땅에 다시 드리워지는 영적 어두움을 본다. 헛된 것에 마음 두지 않고, 이 시대의 ‘비느하스 세대’가 다시 일어설 때 싯딤 광야의 회복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시 106:30-31). 전장연이 수행해야 할 사명은 분명해진다. 다시 비느하스 세대로 일어서는 것, 그리고 비느하스 세대를 세워가는 것….
6월부터 7월, 등불 켜듯 담장에 매달려 붉게 피어나는 능소화의 아름다움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늘 향해 트럼펫을 부는 모습이다. 그래서 영어에선 능소화를 ‘trumpet vine’(트럼펫 덩굴)이라 칭한다. 말씀의 담장에 매달려 하늘 향해 붉은 연가를 불러대는 그 청년 비느하스가 있어 그 시대는 영적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7월, 온 산하가 열기로 덮여가는 때, 말씀의 담벼락에 기대어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올려드릴 나의 연가를 목청껏 부르고 싶은 날이다. “그대 담벼락에/ 의지 삼아/ 꽃 피울 수 있다면/ 더는 소원이 없습니다” (김도연, ‘능소화’).
김운용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예배/설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