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기간에 우리는 ‘국민’이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게 들었고 선거에서 뽑힌 300명 국회의원으로 제22대 국회가 개원한 뒤로도 이 국민이라는 말이 우리의 귀를 쉴 새 없이 두드리고 있다. 선거에서 이긴 야당이나 패배한 여당이나 한가지로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다짐하는데 다른 것이 있다면 여당 쪽의 말씀에는 ‘겸허히’라는 수식어가 대체로 덧붙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 흔히 들리는 말이 ‘국민의 눈높이’다. 국민의 눈높이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씌어 있고 매주 목사님이 강단에서 풀어주시고 하기에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으며 불분명할 때는 기도하며 스스로 찾아가 답을 구한다. 그런데 ‘국민의 뜻’은 무엇이 알려주며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인가. 선거에서 뽑힌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본즉 설마 국민의 뜻이 이런 발언을 하고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아지고 펼쳐진다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국민의 눈높이’를 이 사람들이 맘대로 재고 그에 맞춰 국가를 운영하겠다니 무슨 소린가. 그래서 묻는다.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일해서 돈을 벌고 세금을 나라에 바쳐 정부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납세자가 있고 적당한 나이가 되어 군복을 입고 총을 들어 국토방위의 의무를 다하는 군대가 있어 국가가 유지되는데 이들은 오히려 조용할 뿐이다. 만사에 국민을 앞세우며 ‘국민을 위하여’라고 소리 높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정치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권력의 쟁취라는 점에서 여와 야가 다를 바 없다.
정치에는 국민과 더불어 민족과 시민이 등장한다. 전자는 국제관계에서 배타적 이익을 호소하기 위해서 정당들이 다투어 동원하는 개념이고 후자는 대내적으로 자유와 인권 같은 가치로 ‘국민’을 유혹하는데 사용된다. 국민은 투표장에 들어가 주권을 행사하는 ‘유권자’ 가 되지만 실제로는 정당 간에 권력을 배분하는 작업에 도구가 될 뿐, 차기 선거 때까지 말끔히 잊혀지고 오직 ‘국민의 눈높이’라는 수사(修辭)에 쓰이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백성이 이런 천대를 감수해야할 이유는 없다. 나라가 민주주의 체제에 들어선지 30여 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고서 이어진 전쟁과 독재를 겪고 스스로 국가, 국민, 민족, 그리고 시민의식을 쌓아 올릴 충분한 시간을 가졌음에도 정치가 선순환의 과정에 올라서지 못하고 악순환의 수렁에서 맴돌고 있다. 그 결과로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탄핵과 투옥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았으며 오늘도 야당의 구호는 현직 대통령의 조기퇴진이다. 이에 반하여 여당의 당면 목표는 겹치기로 형사사건의 짐을 지고 있는 야당 최고지도자를 사법처리하는 것이라 이런 정치세력의 쟁투에 국민의 뜻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우리 5천만 국민의지의 최대공약수는 화평이요 국민의 눈높이는 평화다. 실천적으로는 국민적 수준의 화합을 향한 행동이 시작되어 분열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진정한 자유민주체제를 새로이 이룩해야 한다. 지금 같은 극한대립에는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고 결과는 고귀한 자유의 반납이다. 더 말할 것 없이 우리는 분단국가이고 휴전선 저편에 최악의 지도자가 통치하는 최악의 집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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