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대나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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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내가 다니던 현지인 교회의 한 남자 성도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죄송하지만 힘드시더라도 우리 마을에 한번 다녀가 주십시오.” 그가 살고 있다는 동네는 마테머시나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렵에 이미 주말마다 찾아가던 동네가 따로 있어 미안하지만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2주 뒤, 그가 다시 찾아왔다. 울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그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어서 아내와 의논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에 그 마을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배기량 110cc에 불과한 작은 오토바이 뒤에 아내를 태우고 갔는데 길이 온통 돌밭이었다. 혹 타이어가 펑크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시내를 다닐 때는 펑크가 자주 나던 타이어가 멀쩡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마을에 들어선 나는 마을 주민의 생활상을 보고 너무 놀랐다. 제대로 지은 집도 없었고, 농사조차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참담했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어느해인가 천재지변이 나자 정부가 폐허가 된 마을의 주민들을 트럭에 실어 마테머시나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재난을 당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반강제로 이주시켜놓은 것이다.

난민촌이나 다름없다 보니 병든 사람들도 다른 동네보다 많았다. 내 입에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주님, 이들을 보십시오. 정말 비참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를 보내셨군요.’

우리는 그 주부터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주말마다 가서 테이블도 없이 조그마한 나무 의자를 하나 놓고 진료를 했다. 그 마을을 찾아가 이동진료를 하면서 예배도 같이 드리다보니 자연스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분상 공개적으로 예수를 믿으라고 먼저 말할 수 없다. 그대신 내가 그들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전도가 된다. 굳이 말로 예수를 증거할 필요 없이 의료 선교사로서 환자를 사랑으로 진료해주는 것 자체가 전도가 된다. 마테머시나 사람들이 마을에 예배당을 짓기로 했을 때 나는 기쁜 나머지 내가 간단하게 그린 예배당의 설계도를 현지인 전도자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닥터 강, 이렇게 다 해주면 이 사람들의 교회는 실패합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현지인 스스로 교회를 짓도록 내버려두세요. 그래야 자기들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일처럼 열심히 교회를 지을 거예요.”

나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만일 내가 힘을 써서 교회를 지어주면 외국인의 교회이지 자신들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선교 방법을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라고 한다. 선교사가 모든 것을 다 해주려 하지 말고 가능하면 현지인들 스스로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선교 정책은 일찍이 120년 전에 미국 북장로교의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John L.Nevius)가 한국의 선교사들에게 제안한 것이다. 각지에서 파송받아 온 선교사들이 경쟁하듯이 현지인 교회를 물질로 후원하려 하지 말고 모든 면에서 자립(自立)하고 자치(自治)하도록 유도하라는 것이었다. 

한주가 지나 다시 마을을 찾아갔더니 마을 한구석에 건물을 짓기 위한 돌 무더기와 새파란 참대(대나무 기둥)가 잔뜩 쌓여 있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에 예배당을 다 지어놓았다며 내게 선을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초라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지은 교회라며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그들을 격려하면서, 그제야 의자를 만들어주고 지붕을 덮을 함석도 구해주었다.

교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시켜야 했다. 양육을 위한 동역자가 절실했다. 그래서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현지인 장로 두 분에게 자전거를 사주면서 주마다 그곳에 가서 성경공부와 예배를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내가 네팔에서 1차로 활동한 기간 동안 그 교회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그런데 3년 반 동안의 1차 네팔 선교를 끝내고 방글라데시에서 4년간 선교 활동을 마친 후 잠시 네팔에 들렀을 때, 마테머시나의 교회가 완전히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뜻밖에 나를 그 마을로 초청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 초석이 된 초등학교 교사의 아내가 말썽이었다. 그녀는 선교사인 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현지 교인들에게는 말을 함부로 하고 심지어 욕까지 하면서 나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남아날 리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마테머시나 마을 사람 가운데 성격에 문제가 있고 히스테리를 가진 한 여자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얼마나 예민한지, 그녀를 상대하면서 나는 매우 힘이 들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녀가 나를 만나는 동안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니 예수님을 잘 믿고 교회도 잘 간다고 했다. 

예수님을 만나면 정신병자나 다름없던 사람도 변화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비록 그 동네에 세워졌던 교회는 문을 닫았지만, 그 부인은 조금 멀어도 다른 동네에 있는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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