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라는 말씀으로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육신을 따르는 자”이고 두 번째는 “영을 따르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을 따르는 자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성령을 따르는 자, 성령에 이끌려 사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생명과 평안을 향한 영적인 생각도 연습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연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생명과 평안을 주는 영적인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산에 없던 길은 자주 다니다 보면 길이 생깁니다. 생각도 그렇습니다. 좋지 않은 생각은 막아놓고 좋은 길로 다니고 좋은 생각을 하다 보면 길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적인 능력은 깊은 묵상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집중의 능력은 오직 영적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금식을 동반하는 갈망하는 기도와 집중적인 말씀 묵상은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렇게 인생은 하나님을 향한 생각이 하나하나 모아져서 그 생각대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할 때 인생이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의 생각이 성령 안에서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일을 버리고 영의 생각과 영의 일을 따를 때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하나님께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우행호시(牛行虎視)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소의 걸음과 호랑이의 관찰’이란 뜻입니다. 현실을 호랑이처럼 풀숲에 엎드려 예리한 눈으로 사냥감을 지켜보되, 걸음걸이는 소처럼 착실하고 끈기 있게 걷는다는 말입니다. 현실을 모르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현실의 예리한 시각과 분별력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의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사단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와 자녀들을 공격합니다. 특히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우리 내면의 ‘욕심’이나 육신의 생각을 이용하여 유혹합니다. 사단은 우리 내부에 잠재해 있는 욕심을 불러일으켜서 시기와 질투 미움 분노를 일으켜 분별력을 잃게 만듭니다.
또는 사단은 세상의 성공과 번영과 쾌락과 재미와 화려한 것들을 제공함으로 영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실패와 환란과 고통에 처하게 해서 우리 안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 범죄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당랑재후(螳螂在後)라는 말처럼, 곧 사마귀가 참새가 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매미를 잡으려고 엿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욕심의 배후에는 항상 사단의 노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반복되는 삶 가운데서 부정적인 육신의 생각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열정도 없어지고, 무기력해지고, 기대감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매너리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생각에 마음이 굳어져 매너리즘에 빠지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모든 일에 기대감이 없어집니다.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 찬양의 감동,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치유되는 응답의 기대감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 주심을 기대하며, 기도의 응답, 말씀 묵상을 통한 주님의 음성, 찬양의 기쁨과 감동, 성령의 충만함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될 것을 기대하며, 자녀들을 향하여 기대하고, 직장을 향하여 기대하고, 일터를 향하여 기대하며 부정적 감정을 버리고 생명의 생각으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둘째, 감사와 기쁨이 사라집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우리 마음에 두신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4장 7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너리즘에 빠지면 섬김의 기쁨도, 은혜의 기쁨도, 말씀의 기쁨도, 감사의 즐거움도 사라지고 의무와 책임감만 남습니다. 감사와 즐거움을 향한 영적인 생명의 삶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기도의 자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그 시간은 가장 귀하고 즐거운 시간입니다. 주님과 친밀함에 빠져 보좌 앞에 나가 기도하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복된 시간입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굳은 마음, 경직된 마음인 매너리즘에 빠지면 우리의 영은 더욱더 답답해하고 기도의 자리에서 멀어지면서 숨을 쉬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헌신의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헌신은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같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지면 헌신의 자리에서 멀어집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굳어진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은 밭을 기경하고 경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오면 농부는 쟁기나 경운기를 가지고 굳어 있는 땅을 깊이 갈아엎습니다. 헌신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우리의 심령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심령을 경작하여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헌신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법으로 선한 생각을 지켜냄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삶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박일규 목사
<신봉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