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박씨 사육신 박팽년(1418-1456)의 17대손 박노황 모범장로는 대구 중심 전국적인 기독교 신앙활동이 눈부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순천박씨 집성촌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623번지에서 1940년 10월 3일 박시종 이정용 부모 슬하 8남매 중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빈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이 가난하여 중학과정 고등공민학교를 6개월 다니다가 학교가 폐교되어 의사인 하빈교회 의사인 김선빈 장로가 선일중학교를 설립하여 2학년에 편입되어 학생회장으로 조회 때 차렷 경례 등 전교생을 지휘하는 구령도 외쳤다.
하빈교회 중등부 학생으로 신앙생활도 잘하며 성적이 뛰어난 박노황은 고교진학시험에 합격, 한학년 뛰어넘어 성광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우등생으로 고교 졸업후 곧 공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청구대(현 영남대) 야간 법학과에 입학했다. 주경야독으로 1964년도에 대학을 졸업했다. 공군 제대후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대구시청 공무원이 되었다. 박 장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 126:5-6)의 성경말씀에 은혜 받으며 공직생활에 정직, 근면, 성실하게 양심적으로 일했다. 고향 달성군 부군수를 마지막으로 35년만에 퇴임했다. 공적 기관단체 임원으로 3년 더 일하여 전체 공무원 생활은 38년을 하게 된 것이다. 6.25 이후 1952년도에 설립된 남성교회에 고교 친구 권유로 등록하고 교회 일에 충성 봉사하며 빛과 소금의 구실을 성실하게 했다. 어머니께서 장독대에 심어둔 무궁화 나라꽃을 사랑하여 겨레의 끈기 근면 일편단심의 사상을 이어 받으며 박 장로가 서재로 지어 쓰는 서산재집에나 길에 무궁화꽃길을 이루어 즐기고 있다. 달성군에 있는 인물공원에는 삼국유사를 남긴 일연 옆에 사육신 박팽년 동상이 바로 옆에 서 있다.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성삼문(1418-1456)과 집현전학사로 한글창제에 공을 이루었다. 세조 때 벼슬은 충청관찰사를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세조의 왕위찬탈 불의에 항거하는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과 뜻을 같이하는 사육신의 한 충신으로 능지처참의 극형을 받고 만고충절의 큰빛을 남겨 한글겨레에 귀감이 되고 있다. 박팽년은 ‘가마귀 눈비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양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임향한 일편 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이 시조외에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의 한편이 더 있다. 내용은 일편단심 상왕 단종복위를 사육신과 도모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사육신의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 포악한 세조를 까마귀에 비유하고 단종은 야광명월에 비유하여 일편단심 임인 단종만 상감으로 섬기겠다는 박팽년의 순국정신은 도산 안창호가 지은 애국가 3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 만고거울 박팽년의 핏줄을 이어받은 박노황 장로는 시인 수필가로 등단하여 1998년 수필집 ‘빛과소금’을 발행하고 현재까지 7권이 발행되어 박 장로의 시청전도, 비라카미선교, 이웃사랑, 교회봉사, 여러 기독교 단체의 눈부신 활동이 전개되어 있다. 장로문인협회에서 2020년도에 제23회 수필부문 장로문학상을 수상했다. 2021년도 발행한 시 산문집 ‘구봉산 메아리’ 저서로 짚신문학회 주최 제21회 짚신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대구에서 한글서예 겨레함성 저서 발행, 대구원로장로회 회장, 빛과소금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등 남성교회 원로장로로 예술활동과 함께 노익장의 신앙활동이 힘차고 눈부시다. 고향 하빈초등학교 선배 전 연합뉴스 현소환 사장은 ‘빛과소금’ 서문에 박노황 장로는 사회 구석구석 밝게 비추고 썩는 곳에 소금 맛을 내는 이 사회 거울이라 평가했다. 모범장로 박 장로는 확실히 한국 거울 장로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