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멋진 신세계’

Google+ LinkedIn Katalk +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세상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수많은 첨단기기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 경제, 국제정세 등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도 반도체와 정보과학기술의 주도권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과학기술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체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심화하고 전체주의적 통제의 위협이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국가에서조차 트럼프 같은 선동가가 집권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원인도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극단적인 주장이 힘을 얻게 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이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 인류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32년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생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가족을 해체한 후, 인공수정으로 태어나서 국가에 의해 양육된 인간을 전체주의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를 보여주는데, 생화학적인 방법으로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고 끝없는 행복감을 느끼도록 하는 약을 개발함으로써 완벽한 유토피아를 추구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러한 시스템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의 생명과학과 인공지능기술은 헉슬리가 상상한 기술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발전하고 있다. 유전공학은 DNA를 조작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모든 신체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도 컴퓨터 알고리즘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사고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감정과 의식까지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단계에 이르면, 인간의 뇌를 모두 기계에 복제함으로써 인간이 생물학적인 기반을 떠나 실리콘과 기계로 이루어진 존재로 진화할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도 가능하게 된다. 또한,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전하면 인간의 행복도 결국은 뇌의 생화학적인 기능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과학기술에 의해 인간의 행복도 정복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처럼 과학기술혁명은 헉슬리가 묘사했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진정으로 불멸과 행복을 가져다줄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이라고 믿는 새로운 낙관적인 견해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그의 책 『호모 데우스』에서 그려낸 것처럼, 인류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개조하여 초인간을 탄생시키고 거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지배하게 되는 세상이야말로 헉슬리가 그려낸 것보다 더 무서운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한다. 하라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래에는 데이터의 힘을 믿고 데이터가 신이 되는 데이터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도구적 이성만을 끝까지 추구하면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종속되어 그 알고리즘을 숭배하게 된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창조물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이것이야말로 과학기술혁명이 초래할 가장 두려운 결과일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