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이 예수 믿지 않는 가정이어서 나는 꼭 예수 믿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그 해 가을의 끝자락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다. 내 타입이 아니어서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좋았다. 내향적이고 정적인 나는 적극적이고 외향적이고 활발한 그가 참 좋아 보였다.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신앙생활 잘할 수 있을테니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만난 지 80일 만에 덜컥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신혼여행 트렁크에 제일 먼저 성경을 챙겨 넣고, 예배 순서까지 짜서 가지고 갔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으며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난 예수 잘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 갈등도 없고 부부싸움 같은 것은 절대로 안하고 배려와 용서와 사랑만 있을 줄 알았다. 뜨겁게 기도하며 헌신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살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데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남편은 완전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급하고 불같은 성격이었다. 결코 참아주지도 않았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여자가 하는 일이 왜 그 모양이야, 여자가 웬 말이 그렇게 많아” 등등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면 “여자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결혼하면 남자들이 변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이런 남편의 고압적인 태도와 말투에 무섭고 두렵기도 해서 상처를 받았지만, 부부싸움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 때는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전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부부싸움을 안 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난 점점 말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참다못한 나는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동료가 진행하는 행복한 가정생활 세미나와 CCC family ministry 교육도 받고, 가정회복 공부를 해서 학위까지 받았다.
“결혼 생활에서 성공하려면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부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라. 대화하는 방법을 훈련해라. 부부싸움도 대화다. 부부싸움을 잘해라. 결혼 생활에서 갈등은 필수다. 잘 해결할 방법을 연구해라.” 훈련 내용은 대략 이런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부부에 대한 공부를 하니 남편이 아니, 남자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도 결코 그에게 편안한 아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남편이 받은 상처는 나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보다 자존심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대화도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나를 깨닫게 됐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할 줄 아는게 없어요? 못 하나 박는게 뭐 그리 힘들다고” “왜 당신은 항상 신문을 보고 아무데나 던져 놓아요?” “당신은 도대체 내 친정에 관심이나 있어요?” 이 모습이 바로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내가 요즈음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래. 당신이 이해해주니 고마워” “연락 없이 늦어서 걱정했어” “애들아, 오늘 아빠가 더 멋있어 보이지 않니?” “여보, 힘들었지? 수고했어. 오늘은 이상하게 당신이 더 보고 싶더라” 이런 닭살 멘트도 더러 날린다. 요즈음에는 나도 점점 철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김영숙 권사
• (사)가정문화원 원장
• 반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