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멸치 네 마리만 주세요

Google+ LinkedIn Katalk +

돌카에서의 힘든 병원 생활 가운데에서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장거리 이동진료를 다녀오곤 했다. 하루 정도면 갈 거리에 있는 환자들이라면 비교적 쉽게 병원을 찾아올 수 있으므로 적어도 하룻밤을 자면서 가거나 아니면 15시간 가량을 걸어서 도착하는 곳으로 간다.

보통 네팔에서 트레킹 가는 사람들이 하루 걷는 시간이 6시간이고, 많이 걸으면 8시간인데 이동진료 시에는 그 배 이상을 걷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도착한 다음날 진료를 하고 그 이튿날에는 병원을 비워둘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한번은 이동진료를 가는데, 마을에 도착해서 집을 세어보니까 스무 채 남짓이었다.

‘환자가 별로 없겠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환자가 구름 떼같이 몰려왔다. 의대를 금방 졸업한 인턴도 안한 의사와 둘이서 그 환자들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환자들은 사나흘을 걸어서 왔다고 했다. 알고 보니 한 달 전에 전도사들이 학교, 시장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진료 전단을 붙였는데 그걸 보고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1998년 3월에는 포터 두 명을 포함한 일행 열댓 명이 멀리 히말라야의 국경 지역인 시르디바스Sirdibas까지 이동진료를 갔다. 매우 위험한 바위산을 넘어야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가 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길이었다. 바위산 절벽 틈새에 구들장 같은 돌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 돌을 발판 삼아 하나씩 딛고 건너갔다. 잡을 데가 여의치 않아서 손바닥으로 바위를 짚으면서 가야 했다. 밑을 내려다보면 강물이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보였다. 아찔한 절벽을 타고 지나가야 있는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다니 놀랍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동진료를 떠날 때 아내가 몇 가지 밑반찬을 마련해주었다. 양념을 한 오이지와 고추장 양념을 한 쇠고기와 멸치 등이었다. 밑반찬은 꼭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만 내놓았다. 일행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워낙 부실한 식사인지라 현지인들도 한국식 밑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고된 일정에 지친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내놓은 반찬을 싹싹 먹어치웠다.

최종 목적지인 시르디바스를 가기 직전에 방문했던 지역에서 쌀을 비롯해 감자와 양파, 기타 필요한 양념 등을 준비해갔다. 그동안 준비해온 식량과 반찬이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멸치까지 내놓아야 했다.

한참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일행 가운데 젊은 의사인 이성광 선생이 나를 불렀다.

“장로님!”

“네, 왜요?”

“멸치 네 마리만 더 주세요.”

나는 순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미안하고 눈물겨웠는지 모른다. 이 선생이나 나나 한국에 있을 때라면 식사 때마다 멸치 정도는 한 젓가락에 수십 마리씩 집어먹었을 것이다. 다른 좋은 반찬이 있다면 멸치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멸치를 한 마리씩 꼭꼭 씹어 음미하면서 맛나게 먹었다.

그런 곳을 다녀오면 너무 힘이 들어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골 사람들 가운데에는 초기에 조금만이라도 치료를 받았으면 건강을 회복했을 환자가 많다. 그런데 진료할 시기를 놓쳐 고생하다가 목숨까지 잃는 일을 생각하면 불쌍한 마음이 들어 또다시 험한 길에 오른다.

2010년 가을, 세 번째로 네팔에 간 나는 그동안 기도해온 시르디바스에 꼭 가고 싶었다. 미전도 지역을 위한 전진기지 구축을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서다. 10여 년 전에 했던 것처럼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걸을 수 없어서 하루에 4~6시간쯤 걸으니 2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눈물겨운 추억이 있는 시르디바스 부근을 드디어 2011년 3월 초에 몇 분의 전도사와 같이 답사차 다녀왔다. 3월은 네팔의 건기라 걷기에 좋아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절호의 기회였다.

시르디바스는 참으로 황량한 곳이다. 히말라야의 미전도 지역을 위해, 나는 이곳에 선교 전진 기지를 세우고 싶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 확신한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전파될 때까지, 우리의 무관심 속에 잊고 지내는 지구촌 구석구석에 반드시 복음의 빛이 비춰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약속이기 때문이다.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