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날아오는 돌이 운명이라면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다. 구원론에서 출발점으로 삼으면 운명론이 되고, 도착점으로 삼아 뒤돌아보며 고백하는 신앙 고백적 진리가 예정론이다. 하나님의 주권론에서 구원과 관계된 교리가 예정론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상과 관계된 교리가 섭리론이다. 70년을 살고 뒤돌아보니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아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건 무조건적 선택이요, 예정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살아온 삶의 자국자국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손 안에 이루어진 섭리였다. 한 발짝만 달리 디뎠었어도 오늘의 나는 없다.
나는 제106회기 총회장에 취임하자마자 한국교회총연합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보니 한교총 정관에 의해 예장통합 측 총회장이 차기 이사장 겸 공동대표회장이 되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관 개정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고 공동대표회장에서 1인 대표회장 체제가 대세 여론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제1대 1인 대표회장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한교총 제1대 1인 대표회장이 바로 예장통합 총회장 류영모 목사였다. 우리 교회 소재지가 강북권역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제106회기 총회장이 아니었더라면 한교총 1대 1인 대표회장 사역은 나와 상관이 없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요 은혜로 주어진 위치이니만큼 나는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했다. 그 1년 동안 기독교 관련 일반 언론보도에서 긍정 보도가 부정 보도를 넘어선 빅데이터 조사 이후 최초의 쾌거라는 선물을 남길 수가 있었다.
제97회기 때 나는 총회 서기로 섬기다 여러 절차와 논의를 거쳐 CBS 재단 이사로 파송을 받았다. 한국교회 연합사역 현장에 나가보니 우리 교단이 곳곳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CBS 재단 이사회에서도 내정이나 된 듯 어떤 분이 차기 이사장으로 공공연하게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법은 아니지만 관례에 의하면 통합 측 이사 중 한 사람이 우선순위를 갖도록 되어 있는 회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단 자존심상 차려놓은 밥상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경쟁과 대화와 설득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단 한 표 차이로 내가 제27대 CBS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우리 교단에서 총회장을 역임하지 않은 이사가 이사장이 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마침 이사로 파송 받은 것이 아니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발짝만 달리 디뎠어도 오늘의 나는 없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총회장으로, 한교총 최초 1인 대표회장으로, CBS 재단 이사장으로 섬기는 이 일이 한국교회 사상 처음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내 노력으로 내가 잘나서 섬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이기에 한 걸음만 빨리, 더디 혹 달리 디뎠어도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섬긴 내 인생 여정 가운데 가장 잘한 일 한 가지를 들라면 나는 한소망교회를 개척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충신교회를 떠나 망원제일교회에 부임하던 날 박종순 목사님은 기도해 주시며 불혹의 나이가 되기 전에 평생 섬길 사역지가 어딘지 기도를 하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불혹의 나이가 되기 전 38-9세 되던 그때 내 앞에는 정말 다양한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고 싶은 길은 하나둘 끊어지고 나는 교회 개척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교회 개척 사명에 가슴이 열리고 불이 붙었다. 한소망교회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 모든 것이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였다. 한 발짝만 달리 디뎠어도 오늘의 나는 없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