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마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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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추억을 회상해보지 아니한 자가 또 몇이나 될까. 추억은 아름다울까, 아니면 괴로울까. 이런 생각에 잠길 때 언뜻 “지난날의 불행스러웠던 추억마저 감미롭다”고 말한 키케로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학비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신태인고등공민학교에 입학했다. 교과과정은 다르지 않지만 중학교에서 갖춰야 할 시설이 미달되어 교육 정책상 중학교로 인가를 받지 못한 학교다. 그런데도 6·25전쟁 직후라서 가난한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저렴한 학비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줬으며, 이 학교에서 검정고시에 합격해 진학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도 마련해줬다.

1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매달 납부해야 할 학비를 한 푼도 내지 못했는데 1학기 성적이 나왔다. 그렇다고 학비를 면제받을 만큼 우수한 성적도 아닌데 어찌 1학기 성적표가 나왔을까. 성적표를 받은 다음날 오후 수업을 마친 뒤였다. 나는 의문점을 가지고 담임선생님을 뵈려고 교무실에 찾아갔으나 자리에 안 계셨다. 그냥 나오려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신다.

“하재준” “예” “어찌 왔느냐?” “담임선생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무슨 일로, 내게 말할 수 없느냐?” “수업료를 납부치 못했는데도 1학기 성적이 나왔습니다. 학비를 면제 받을 만큼 성적이 못됐는데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서요.”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이리 와 앉아라” 하시며 말씀하셨다. 

“지난 6월 초순에 네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셨다. 그날 가정형편을 말씀하신 뒤 자퇴할 뜻을 보이시더라” 나는 “자세한 사정을 말씀해주십시오” 했더니, “네 어머니께서 ‘애 아버지 약값도 벅찬데 학비까지 내기가 어려워서요’라며 목이 메어 말씀을 잇지 못하시다가 또다시 ‘애는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때부터 6학년 졸업하기까지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해왔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신문지국장님이 갑자기 혈압이 높아 지난 2월 초에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월급을 받지 못했기에 학비를 내지 못했다’는 말씀도 겸해 들려주시더라.”

나는 어머니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어머니! 그간 지국장님이 제가 어려울 때마다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지난 1월에도 ‘중학교’ 입학금에 보태 쓰라고 한 달 월급 이상의 금액을 주셨기에 받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국장님 병원비 때문에 월급을 못 받는다고 해서 다른 신문을 배달할 수는 결코 없어요. 제가 그분을 도울 수 있는 길은 계속 신문을 배달해드리는 것이지요. 저도 현재 학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어요.” 교장 선생님은 “네 어머니는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본인 역시 어린 자식의 말을 들으면서 부모 노릇 못하는 죄책감에 많이 가슴이 아팠다며 말씀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교장 선생님은 어머니께 “우리 학교는 이런 학생을 위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학비 문제는 여러 선생님들과 의논해 결정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드린 말씀은 당분간 비밀로 하십시오. 어린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칠까 조심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며, “이런 일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네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너의 학비는 면제됐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래 훌륭한 일을 해야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가난이 결코 자랑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부끄러움은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후손들에게 학창시절의 어려움을 이같이 극복했다고 떳떳이 말하고 싶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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