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Mediator)이시다. 죄를 지은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중보자가 필요하다. 중보자(仲保者)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는 관계를 성립시킬 수 있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원죄(原罪, Original Sin)를 안고 사는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거나 깨달을 수 없는 존재이다. 영적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참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가 나타나셨다. 독생자 그의 아들을 구속자(救贖者, Redeemer)로서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지혜가 나타나셨다. 영광스럽고 무한히 감사할 일이다. 찬양을 영원히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예수님은 우리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셨다. 대속(代贖, Atonement)의 희생양이 되어 주셨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를 수가 없다. 속죄(贖罪)를 받으려면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해야만 한다. 오직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구약에 약속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구원을 가져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구원 받은 경건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의 원리를 알았다. 욥은 그의 곤경을 말하고 해결해 주실 중보자가 필요함을 느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중재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중보자로서의 사명을 갖게 되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 메시지의 중보자가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받는 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을 위한 대속자, 중보자, 중재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 그 구원 성취를 보증하신다.
구약 시대에는 멀리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장차 올 미래의 날에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고 했다. 다윗과 그 후손을 통해 구주를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다윗의 나라, 다윗의 왕좌가 영원하리라는 약속을 주셨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선포할 때마다 영원한 구원과 구속을 가져올 다윗의 나라를 예언했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는 당시에 백성들은 장차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메시아 대망(待望)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슬프게도 그들은 정작 메시아가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영(靈)의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완악(頑惡)하고 패역(悖逆)하여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만세 전부터,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 예수를 세우셨다. 그를 보게 하시고 믿게 하셨다. 우리는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다. 광대무비(廣大無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압도되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때문에 중보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유한(有限)하고 작은 우리의 수준에 맞게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중보자가 되어 주셨다. 중보자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나의 죄를 대속, 구원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내 평생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리로다.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