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향기] 이북지역장로협의회 회장 강구영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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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수로 일군 신앙 이력서,

신앙 흙수저에서 요셉 총리

이북지역장로협의회 회장 강구영 장로(61세·대구 시온교회)

지난 1월 이북지역장로협의회 신임회장에 선임된 강구영 장로(61세·대구시온교회)는 청년 시절 요셉 닮기를 꿈꿨다. 힘든 상황을 보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간 요셉처럼 오직 주일성수라는 목표를 향해 뚝심 있게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요셉 총리처럼 쓰임 받았음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됐다. 지난 7월 9일 본보 르비딤홀에서 만난 강구영 장로는 지난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감사”라며, “10대부터 지금까지 감사로 고백하지 않을 순간이 없다”고 전했다.

흙수저로 시작한 신앙생활

강구영 장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첫발을 디뎠다. 성탄절 이브 예배였는데 모두 일어나서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어색함을 참을 수 없었고, 손잡고 찬양하라는 이야기에 도저히 있을 수 없어 교회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멀어지지 않고 띄엄띄엄 출석한 것이 돌아보니 감사의 시작이었고, 신앙생활의 첫 단추였다. 강 장로는 당시 1982년 12월 주일학교 고등부 수료증을 지금까지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1982년 주일학교 고등부 수료증.

대학부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강 장로의 부모님도 지인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4형제 중 유일하게 부모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이 입교한 교회에서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마음먹고 보니, 교회 안 청년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 및 장로 자녀는 ‘금수저’, 초신자의 자녀는 ‘흙수저’ 같았다. 하지만 고등부에서 경험한 예배와 성경공부, 교회 행사 등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었고, 앞으로 모든 교회의 공 예배에 참석할 것을 다짐했다.

당시 집과 교회 거리가 꽤 멀었지만 새벽예배부터 모든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때 간절히 기도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바로 “하나님 20대 중반에는 꼭 자동차를 주시옵소서”였다. 강 장로는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해 ‘콩나물 시루’ 같던 만원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자동차가 드문 시대였고, 나이도 젊어 과연 기도가 이루어질까 싶었지만, 정확히 25세에 중고자동차를 소유하게 됐다. 그 자동차를 활용해서 강 장로는 새벽기도와 금요기도회에 성도들을 태우고 이동하는 차량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중 한 명이었던 여성 청년을 아내로 맞이했다.

강 장로는 “그때 예배의 자리를 빠짐없이 지킨 것이 신앙의 기초가 됐다”며, “천사 같은 아내 이인숙 권사도 예배의 자리를 지킨 덕분에 만날 수 있었으며, 지금의 강구영 장로 또한 매 순간의 예배가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삶의 제1원칙 주일성수

강 장로의 첫 직장은 교회를 전문적으로 건축하는 작은 건설회사였다. 90년대 초반 교회 건축은 어려운 분야에 속했다. 교회 건축을 위한 은행대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담보 대출을 받는 등 교회 건축에 필요한 돈이 모두 마련된 후에야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강 장로는 “당시 목회자들은 정말 담대했다. 교회마다 건축을 앞두고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의 분량으로 기도하며 공사자리를 지켰다”고 회상했다.

대구의 모 교회를 지을 때였다. 모 교회 담임 목사는 주일예배 때마다 건축 터 옆 밭에서 솥을 걸고 밥과 국을 손수 준비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던 강 장로는 ‘주일예배는 교회의 천국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강 장로는 “현재 대구 시온교회 추상엽 위임목사도 나눔의 목회, 퍼주는 목회를 펼치며 주일마다 성도 모두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청년 때의 깨달음을 교회의 장로가 된 지금까지 지킬 수 있도록 모든 형편 주관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부부가 함께 이룬 사랑의 은사

강 장로는 결혼 전 건축회사에 다니면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에 열심을 다 했다. 당시 각 교회학교 수련회를 기도원에서 연합해서 열곤 했는데, 한번은 수련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방언을 받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그때, ‘하나님 수련회에 참석한 아이들은 은사를 받고 체험을 하는데, 인솔 교사인 저는 이렇게 가만있어도 되겠습니까’라는 마음이 들어 동산에 올라가 소리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성령의 은사 중 최고라는 사랑의 은사를 주세요!”

이후 강 장로는 아내 이인숙 권사와 가정을 이루고 첫 아이를 얻었다. 수련회로부터 5년쯤 지난 어느 주일, 강 장로 가족이 예배를 마치고 자가용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강 장로는 아내에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됐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고백하니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때 잊고 있었던 수련회에서 사랑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의 은사가 가정에서 이미 이뤄졌구나!’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왔다.

당시 학교 공무원이었던 아내는 호주머니 안에 있는 모든 것,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퍼주기로 유명했다. 하루는 아내에게 “퍼줘도 적당히 퍼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한두 달 여유분은 남기고 퍼줬으면 한다”고 당부하니, 아내는 “꼭 필요한 데 나누다 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라”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부부가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나눔에 힘쓰다 보니 강 장로는 어느 순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강구영 장로 이인숙 권사 부부와 세 아들은 모두 한 교회를 섬기고 있다.

흥부에서 요셉 총리로

당시 건설회사 현장 소장은 술·담배가 기본이었고, 주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일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강 장로는 입사 면접에서부터 “저는 주일은 꼭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고 조건을 걸었고, 대표이사의 승인 하에 건설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하지만 매주일마다 일을 하지 않는 강 장로에게 동료 소장들은 이의를 제기했다. “강 소장만 일요일에 쉬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이어지자 대표이사는 강 장로에게 “일요일 아침에 현장에 얼굴만 비추고 가라”고 권유했다.

강 장로는 새벽 일찍부터 현장을 찾아 한 바퀴 둘러보고, 교회로 달려가 교회학교 봉사를 하고 예배를 드렸지만, 이후 또 “왜 강 소장은 일요일에 얼굴만 비추고 일을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어쩔 수 없었던 대표이사는 강 장로에게 “한 달에 두 번만 일요일에도 일을 해주는 것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그때 강 장로는 망설임도 없이 “저는 내일 인수인계하고 일을 그만 두겠습니다”고 말했다.

그 길로 회사를 나온 강 장로는 ‘주일성수를 위한 길은 자영업 뿐이다!’고 결심했다. 한 달여 준비 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흥부종합건설’을 시작했다. 회사 설립은 주일성수를 위한 명분일 뿐 수익구조는 전혀 염두 하지 않았다. 오직 성경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를 붙잡고, 심령이 가난한 자의 대명사 ‘흥부’를 회사의 롤모델로 삼아 1인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강 장로는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눈으로 확인하며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하도급업체에 기한 압박은 전혀 주지 않았다. 예배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강 장로 스스로 기한에 얽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했을 뿐인데, 설립 1년 만에 감당할 수 없는 일감이 쏟아졌다. 앞 공사의 수익을 바탕으로 다음 공사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지만, 얼마의 잔고가 있는지 살피지 않아도 될 만큼 줄줄이 공사를 도맡았다.

흥부종합건설 설립 후 5-6년 동안 수익은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돌연 IMF가 찾아왔다. 당시 건설사의 대금은 30프로 정도만 현금으로 지불했고, 나머지는 모두 어음이었다. IMF는 어음을 모두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줄도산이 자연스러운 시기, 흥부종합건설은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다. 신앙인으로서 일을 맡겼으면 그에 맞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흥부종합건설은 비록 공사대금을 못 받았지만, 하도급업체의 어려움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90프로 이상의 대금을 모두 지불했다.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보니 빚지지 않아도 될 만큼, 그동안 벌어 놓은 돈 그만큼이 사용됐다. 꼭, 요셉이 7년 풍년의 시기에 저장해 놓은 수확물을 이후 7년의 흉년의 시기에 사용한 것과 같았다. 강 장로는 흥부를 롤모델로 삼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요셉 총리가 되어 하도급업체의 생명줄로 쓰임 받았다.

당시 하도급업체 사장들이 “앞으로 강 사장이 공사를 하면 공짜로도 일해 주겠다”고 말할 만큼 신뢰가 쌓였다. 하지만 이후 공사현장이 변화되면서 건축주가 갖은 이유로 공사대금을 미루는 일이 반복되며 회사를 그만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강 장로는 45세에 관급공사 현장 소장으로 복귀했다. 관급공사는 주일성수가 가능하다는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5년 전부터 강 장로는 경력을 살려 프리랜서 감리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장로는 “감리는 시간 활용에 비교적 자유롭다”며, “은혜의 자리도 시간을 낼 수 있어야 참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웃으며 “직업 만족도가 최고다”고 전했다.

아멘하는 장로

강 장로는 2011년 4월 장로 직분을 받았다. 집사 시절부터 직분이 귀중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장로 장립의 소망을 안고 신앙생활 했다. 장로 임직식 때 축사를 전한 목사님의 말씀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 말씀인즉슨, “아버지와 아들이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소 한 마리를 보고 아버지가 ‘이 소를 지붕 위로 올리라’고 했다. 아들은 ‘네 아버지 한번 해보겠습니다’고 답했다. ‘네’라고 할 때 그 아들에게 유익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강 장로는 “장로 임직식 때 목사님이 말씀하시면 ‘아멘’ 하는 장로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아멘으로 찬성하고 움직이면, 후에 숨겨진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아멘으로 먼저 답하고, 행동하니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고 고백한다.

‘흙수저’로 시작한 신앙생활은 ‘오직 주일성수’라는 철학 아래, ‘아멘’으로 답하다 보니 어느새 장로가 되었다. 이후 △함해노회장로회 제41대 회장 △함해노회 제50대 부노회장 △이북지역장로회협의회 제33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제52회 부회장 △한국어린이전도협회 대구지회 상임이사까지… 세워주신 자리에 감사와 기쁨으로 서게 됐다.

지난 1월에 열린 이북지역장로회협의회 제33회 정기총회에서 강구영 장로는 신임회장에 취임했다.

끝없는 배움과 도전

강 장로는 올해 초 신앙의 선배로부터 한국장로대학원(이사장 심영식 장로, 원장 박래창 장로) 입학을 추천 받았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주 2회 수업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아멘’하기로 하고, 올해 27회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입학 전 ‘수업은 빠져도 상관없겠지’라는 생각은 첫 수업을 듣고 전면 수정했다. 강 장로에 따르면 “장로의 시야를 넓혀주는 고품격 강의”에 빠져들어, 지금은 장로대학원 수업이 일정의 1순위가 됐다. 첫 수업 후 지금까지 개근을 지키고 있다. 강 장로는 “KTX로 이동하는 두 시간 동안 연합회 일을 하다 보면 금새 서울에 도착한다”며, “이동 시간이 버리는 시간이 아닌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라 서울이 이웃집처럼 편하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현재 강 장로 부부와 세 아들(찬모, 청모, 진모)은 모두 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첫째와 둘째는 가정을 꾸리고 삶의 터전을 대구 밖으로 옮겼지만, 매 주일이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기쁘게 주일예배를 드렸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강 장로는 “세 아들을 키우면서 힘에 부쳤던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세 아들이 함께 교회 사역에 든든하게 힘을 보태줘 감사하다”고 전했다.

강 장로는 올해 1월 이북지역장로회협의회 회장 취임식에서 요셉을 이야기했다.

“요셉은 보잘 것 없는 막내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을 귀하게 여겼다. 또 그 꿈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모든 소유를 주관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보디발 집에 축복을 부어주었다. 세움을 받는 그 순간부터 ‘나’로 하여금 공동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요셉 같은 장로 되기를 기도한다.”

강 장로의 ‘요셉의 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강 장로는 “앞으로 하나님만 바라며 주어진 자리에서 ‘아멘’하며 사명을 다 하고 싶다”며, “사명의 자리 곳곳에 하나님께서 동역자, 돕는 자를 예비 해 두셨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제5차 한국어린이전도협회 전국이사대회에 참석한 강구영 장로(왼쪽 네번째).

/박성희 기자

 

<강구영 장로 이력>

계명대학교 공과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함해노회장로회 회장(2021년 제41대 역임)

함해노회 부노회장(2022년 제50대 역임)

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2023년~현재, 제52회)

이북지역장로회협의회 회장(2024년~현재, 제33회)

한국어린이전도협회 대구지회 상임이사(현재)

총회 장로총대(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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