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서울역 거지 왕초가 백악관 안보비서관•장로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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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덕(1936- )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부모와 함께 귀국하였다. 서울 중학교 2학년 때 6.25를 맞아 부모가 인민군에게 처형을 당하여 고아와 거지생활을 하였다. 불광동에 있는 희망원에 있다가 도망쳐 주로 서울역을 중심으로 염천교 다리 밑에서 29명이 시작하여 129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소매치기를 하였다.  

어느 날 미 공군 장성의 승용차에서 가방을 훔치다가 멀리서 호위하던 헌병에게 붙잡혀 사실을 고백하였다. 내가 이 일을 해야 거지 100여 명이 산다는 말을 들은 미 장군이 숙소에 데리고 와서 하우스보이로 삼았다. 그는 장군에게 내가 없으면 거지 100여 명이 굶어 죽는다고 하니 장군이 거지 100여 명을 제주도 고아원에 보내고 그는 미 공군 사령관 스티브 토마스 화이트 중장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953년 어느 주일에 양아버지와 함께 여의도 비행장에 있는 미군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 앞자리에 이승만 대통령과 주변에 미군 장성들이 있었는데 예배에서 임종덕은 목사님의 설교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후 화이트 중장과 함께 미국에 가서 풋싱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해 졸업 때 하버드대 개교 이래 ‘최초의 별’이라는 명예로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서울역에서 소매치기를 하던 거지 왕초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1967년 25세에 미국 사관학교에 입학해 우등으로 졸업하고 월남전에 참전해 미군포로를 구출하는 작전의 임무를 마치고 귀대하다 베트공에게 포로가 되어 심문을 받았다. 북한군이 “이놈은 틀림없이 남조선 군인이다” 한국말로 심문하면서 매를 너무 많이 맞아 실신하였다. 그는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이라고 하였다. 그 후 탈출해 미군 참모총장의 양아들로 미국 존슨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 후 닉슨 대통령 때 백악관 안보비서관이 되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다. 그는  LA 동양선교교회 장로가 되었으며 서울에 오면 서울역을 잊지 못하여 찾아 옛날 거지 생활을 추억한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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