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18)

Google+ LinkedIn Katalk +

‘창조적 역발상’ 아이디어로 유행 상품 ‘대박’

긍정적 가능성 발상으로 접근… 해결책 보여

비즈니스도 예술, 여러 번 대형 히트상품 만들어 내

내가 방림방적에 가보니 공장 빈터에 지저분하게 오염된 두꺼운 광목 원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광목은 수출 셔츠용 얇은 T/C 원단을 피그먼트(페인트성 안료) 날염할 때 염료가 번지지 않도록 속지로 사용한 것들이다. 날염 기술이 발전한 뒤로는 이런 속지가 필요하지 않게 됐지만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해서 이런 원단이 있어야 했다. 한 번 사용하고 버릴 수 없으므로 여섯 번쯤 사용한 후 빼놓은 것인데, 그러다 보니 여러 패턴의 프린트가 원단에 어지럽게 겹쳐서 찍혀 있었다.

“상품으로 쓸 수 없는 폐품이지만 버리기가 아까워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메트로에서 이 원단을 처리해주시겠습니까?” 거저나 다름없이 준다는 것이었지만 버리는 것도 비용이 드는 일인지라 사실상 떠맡기는 셈이었다. 계약에 따르면 수출 잔품, 클레임 상품, 불량품 등을 우리가 전부 처리해주기로 되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이런 쓰레기 수준의 원단은 처음이었다. 특히 우리는 공업용 원단이 아니라 패션 원단을 취급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그것을 어디에도 쓸 데가 없었다. 그러나 못한다고 할 입장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돌아왔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공장에서 염색, 가공, 실험실 직원들과 상의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불규칙한 패턴들이 여러 번 겹쳐 지저분해진 원단을 보고는 다들 고개를 저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색이 진해서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라는데 생각이 이르자 조금이라도 색깔을 탈색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완전 탈색은 불가능하니 50% 정도 탈색을 해봤다. 그러자 원단에 깔린 무늬들이 은은하게 어우러지면서 그라운드(바탕)에 묘한 입체감이 생겨났다. 그 위에 밝은 색의 피그먼트로 간격이 적당하고 모양이 간결한 무늬를 프린트해봤다. 이런 실험을 방림방적 실험실, 조색실과 함께 여러 차례 한 끝에 괜찮아 보이는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그라운드의 불규칙한 무늬와 그 위의 밝고 선명한 무늬가 보기 좋게 대비돼 묘한 세련미를 풍겼다. 일부러 만들려고 한다면 생산원가가 두 배 이상 들어갈 만한 제품이 된 것이다.

원단을 시장에 내놓자 좋은 반응이 나왔다. 덤핑 가격이 아닌 신규개발 제품에 준하는 가격을 매겼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이 원단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이중 프린트를 한 제품으로 알았다. 심지어 이 원단은 당시 디자인의 흐름에도 영향을 줬다.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의상 디자이너들이 이 소재를 가지고 트렌디한 옷을 만들었고, 그 패션이 인기를 끌자 다음 시즌에는 이 원단을 모방한 제품까지 나왔다.

방림방적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골칫거리를 해결했고, 우리 회사는 싼 가격에 원단을 가져와서 ‘대박’을 쳤다. 제품업자들은 잘 나가는 원단을 싸게 살 수 있었고 디자이너들도 새 제품을 만들어 유행을 선도했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신나는 일, 모두에게 유익이 된 일이었다.

이 일은 내게는 ‘창조적 역발상’의 소중한 아이디어를 얻는 계기가 됐다. “어떤 문제라도 긍정적인 가능성의 발상으로 접근하면 해결책이 보인다”는 확신이 들었다. 꾸준히 집중하고 몰입하면 생소했던 것들이 터득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상의 전환으로 성취를 하고 나면, 그 희열로 에너지가 충전돼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몰입하게 되는 리듬이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창작 예술가들에게나 그런 리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즈니스 세계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비즈니스도 일종의 예술이다.

그런 자세 덕분에 이후로도 여러 번 대형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패션 사업의 묘미는 바로 그런 데 있기에 지치지 않고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여유… 

곧 성공의 시작

‘긍정적인 시각’의 원칙은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통했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이나 나나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어색한 관계가 극복된다. 관계가 부드러워지면 관대해진다. 그리고 쉽게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의사소통이 되면 관계가 끈끈해지면서 서로간의 강한 끌림이 신뢰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한번은 김 회장과 거래를 하던 재계 실력자가 김 회장에게 엄청나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잘못은 약속을 못 지킨 우리에게 있었고, 그는 우리 회사의 월말 자금줄을 쥐고 있었다.

일이 꼬이려니까 의도치 않게 계속 오해가 쌓여갔고 불신이 극에 달했다. 급기야 그는 납품대금으로 우리에게 지불한 어음을 은행에 공탁금을 걸어 지불 정지시켰다. 그에게서 받은 어음이 우리가 지불할 당좌계좌와 연결되어 있기에, 지불거절 처리가 되면 부도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자금이 동결되면 바로 다음날 필요한 월말 자금부터 펑크날 것이었다.

우리는 오해를 풀어보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김 회장과 나, 그리고 조정자 역할을 맡은 최수환 사장(부산염직 사장, 이후 국회의원을 지냄)과 정릉동에 사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양측에서 나온 7~8명이 마주앉기는 했지만 생각처럼 대화가 풀려가지는 않았다. 서로의 주장만 길게 이어질 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채로 밤이 깊어졌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양쪽 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언성이 높아졌다. 어느 쪽이든 판을 엎고 뛰쳐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손바닥에 저절로 땀이 고이고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 사태를 넘기지 못하면 회사가 부도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점점 차올라왔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