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카톡글에 오른 ‘아름다운 인연’은 감동이 넘쳤다. 내년에 정년퇴임을 앞둔 어느 의과대 순환기 내과 교수가 겪은 역경과 출세의 고백이 감명 깊었다.
남존여비사상이 투철한 농촌시골의 완고한 부모 밑에서 순정 소녀의 향학길은 캄캄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고 순정은 초등학교에 찾아가 복도에서 교실안을 바라보고 한글을 익히며 산수공부도 했다. 그 길도 엄마에게 들켜 초등학교도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어느 날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쑥을 뜯다가 누가 두고 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동네 근처 유일한 중학교에 젊은 여선생 한분이 부임해 오셨다. 이 유선희 선생님 눈에 책 읽는 순정 소녀가 보였다. 순정의 절절한 항학열 소리를 듣고 밤마다 자기집에 오게해 국어, 산수, 도덕, 사회, 자연, 초등과정을 잘 가르쳐 주셨다. 중학과정도 교육할 때 20분 거리를 밤에 다니는 딸의 공부 광경을 어머니가 알게 되어 아버지께 이르지 말고 딸을 잘 도와 달라 유선희 선생님이 말씀드렸다.
그럼 내 몫까지 잘 배우라고 하며 딸의 초․중등과정 공부에 암암리에 도와주셨다. 유선희 선생님은 책 읽던 순정을 봤을 때 “순정아, 당장은 쓸모없을 것 같아도 언젠가는 도움될 날이 있다. 네가 노력한 만큼 네 인생의 가치도 넓어진다”라고 격려말씀을 했다. 유 선생님 자신도 부모님 반대로 공부가 어려웠으나 혼자 열심히 공부해 대학졸업까지 하고 교단에 섰다고 하셨다. 그간 열심히 유선희 선생님 학업지도를 받은 순정 학생은 전국고교 수험생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대학입학검정고시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유 선생님은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입학지도를 해주시어 유수한 우등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의대에 합격했다. 유 선생님과 어머니가 기뻐하셨다. 순정 수험생도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큰 딸을 혼자 서울 못보낸다고 서울의 대학 유학을 극력 반대했다. 순정은 가출까지 결심했으나 유 선생님 만류로 중단했다. 입학등록금을 마련해 오신 유 선생님 설득으로 아버지도 딸이 서울로 가는 대학진출을 허락하셨다. 1학년 때 흔한 미팅도 다 물리치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고 어려운 의학용어 외우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과외지도도 열심히 했다. 1학기 우수한 성적을 이루고 시골 고향집에 내려갔다. 부모님도 뵙고 중학교에 유 선생님을 찾아갔다. 폐결핵에 걸려 학교를 그만두셨다고 했다. 순정 제자에게 남겨 놓은 미발송 편지에 “순정이는 훌륭한 내과 의사가 될 거야” 제자에게 희망을 말씀한 유선희 선생님은 공부에 방해될까 봐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고 써 두셨다. 몹시 그립고 보고싶은 선생님을 사방 알아봐도 아무도 소식을 몰랐다. 언젠가 꼭 뵙게 되리라 마음 먹으면서 오직 학업에 열중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정이나 의사시험에 단번에 합격했다. 순환기내과 의사가 되고 의대 교수가 되었다. 미국에 가서 의학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았다. 유 선생님 닮으라고 선희라 이름지었다. 성년이 된 딸이 남자 친구를 데려온다 해서 허락했더니 어느 날 헌칠한 청년을 데려왔다. 고교 교사였다. 미국 유학이나 야망이 없는가를 물어 봤으나 제자들의 꿈과 희망을 밀어 주는 스승으로 남겠다고 했다. 큰어머니가 자신의 교사상 모델이라 했다. 결혼 승낙을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아두고 사돈간에 상견례 하는 날에 극적으로 유선희 선생님을 만났다. 남편 경영의 한식음식점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사위 정우가 조카라 했다. 너무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반가운 눈물이 흘렀다. 결혼식 날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인사를 마친 다음 순정 교수는 유선희 은사님 앞에 큰절을 올렸다. 아직 폐가 나쁜 유선희 선생님을 자신의 대학병원 고급 입원실로 모셔 잘 치료해 드렸다. 내년 정년 퇴임하면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자고 약속했다. 유선희 선생님과 순정 순환기 내과 교수는 참으로 고운 인연의 사제지간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