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왜 내가 울컥 복받쳐 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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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진 장로 부총회장 후보 단독 등록

이번 제109회기 총회 장로 부총회장 후보로 단독 등록한 윤한진 장로는 학창 시절, 청년 시절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정치 일번지로 일컬어지던 대전 중앙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 시기에 총회가 극한 대립으로 갈등하고 싸우다 마침내 분열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30여 년 전 내가 처음 윤 장로를 만났을 때 그는 교회에 나오면서도 1년 2년 등록을 망설일 만큼 교회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던 신앙의 방황기였다. 교회 등록 이후엔 모태신앙에 불이 붙어 누구보다 뜨겁게 그 열정이 타올랐다. 교회 모든 봉사와 궂은 일 감당하며 섬기는 자리엔 항상 그가 있었다. 

윤 장로는 마흔이 갓 넘어서던 때 장로로 임직하고 사회에서도 청년 사업가로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이 무렵 그는 사업이 어려워지고 모든 것이 꼬이고 얽혀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바로 이때 한소망교회는 1만 평 건축 부지를 구입하고 건축위원회를 구성해야 했다. 장로 중 단 한 사람 건축위원에서 빠져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윤한진 장로였을 터인데 나는 그를 건축위원장으로 임명을 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건축설계사 김혜완 장로, 감리사 천명선 장로, 건축회사 부사장 송근 장로 등이 포진해 건축이 끝날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우리는 최고의 명콤비를 자랑하게 되었다. 

모든 성도가 같은 뜻, 같은 비전 아래 같은 말을 하며 교회를 섬기는(고전 1:10) 공동체가 우리 교회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당회, 장로님들은 나의 손이요, 발이요, 분신 같은 분들이다. 그중의 한 분 윤한진 장로가 제109회기 장로 부총회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순간, 지나온 모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나는 북받치기까지는 아닐지라도 복받쳐 오르는 울컥의 감정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총대들의 사랑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총회 109회기 동안에 (장로부총회장 제도 14년 동안) 한 교회, 한 당회 안에서 총회장과 장로 부총회장을 내는 첫 교회가 될 듯도 싶다. 나야 어릴 때부터 비저너리로 성장하며 신학교에 들어가던 20대 초반부터 총회장의 꿈을 꾸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윤 장로는 한 번도 부총회장의 꿈을 꾸어본 사람이 아니다. 

이번 제109회기 강북권역에서는 누가 보아도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출신 이승철 장로와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출신 최상헌 장로의 대결로 보였다. 그러나 이 구도는 너무나 극한 대결로 총회 내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에 두 분이 흔쾌히 양보해 주시고 떠밀려 나온 후보가 윤한진 장로였다. 마지막엔 꿈이 많은 박주은 장로마저 귀한 결단을 하게 되어 우리 윤 장로가 단독 등록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 같은 전방위적 위기 시대에 맨 앞자리에 선다는 건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래서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복음적 에큐메니컬이라는 총회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한편으론 든든하기도 하다. 어제 단독 등록 이후 밤잠을 설친 건 복받친 그 울컥의 감정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총회장으로 섬길 때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총회장이 된 듯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해주었다. 윤한진 장로가 총회를 섬기는 어간에도 틀림없이 한소망교회는 각자 자신들이 한국교회의 리더가 된 것처럼 기도로 동행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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