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예수님 때문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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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교통 사정이 좋지 않다. 자동차를 사서 몰고 다니고 싶어도 자동차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왕진을 다닐 때는 주로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네팔에 처음 가서 6개월 동안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속해 있던 IMF에서는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리려 해도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그나마 비용이 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너무 아쉬웠다.

네팔에 간 지 1년 반쯤 지났을 무렵, 그 사연을 영락교회에 알렸더니 오토바이 살 돈을 보내주셨다. 덕분에 기동력은 생겼지만 일곱 번이나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 

한번은 서울에서 두 분의 목사님을 영접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카트만두까지 나갔다. 목사님들이 포카라까지 오셨지만 바쁜 분들이라 하룻밤만 묵고 바로 돌아가신다기에 오토바이를 타고 부지런히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앞서가던 택시가 갑자기 정지해 충돌하고 말았다. 나는 잠시 공중에 붕 떴다가 길가 시궁창 쪽으로 떨어졌다. 오른쪽 무릎에 열상(裂傷)이 있었으나 치료받을 시간이 없어서 손님들을 모시고 계속 돌아다니다 나중에 응급실에 돌아가서야 봉합 치료를 받았다.

하루는 포카라에서 멀지 않은 한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거적때기를 깔고 예배를 드리고 진료를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한 청년과 친해졌다. 그는 권투와 태권도를 익힌 그 동네에서 유명한 깡패였다. 하지만 어느 선교사로부터 성경을 선물 받아 읽는 가운데 믿음이 자라고 있는 귀한 청년이었다.

하루는 그가 내게 불쑥 물었다.

“당신은 한국에서도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힘들게 삽니까?”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삽니다. 네팔에 와서 이렇게 봉사하는 것도 다 예수님 때문이지요.”

순간 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결국 회심해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는 나를 ‘아저씨(uncle)’라고 부르며 따랐고, 신앙생활을 할 때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 집에 달려오곤 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찾아와 신학 공부를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인도에 있는 신학교로 보내주면 열심히 공부해서 네팔을 위한 목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인도에 있는 신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러다 1년도 못 되어 내가 네팔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자력으로 학교를 마쳤고, 4년 후 다시 내가 네팔을 방문했을 때 그가 카트만두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국인 선교사와 결혼했고, 미국의 풀러신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내가 1995년 두 번째로 네팔에 갔을 때는 그가 교회 개척을 하면서 신학교까지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실로 믿기지 않는 놀라운 사역들을 하며 네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가 되었다. 특히 네팔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 가장 큰 무리가 모인 옥외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나는 그를 통해 가까운 장래에 네팔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런 그를 그냥두지 않았다. 그가 부패한 정치판에 빠지는가 하면 가정에도 많은 어려운 문제가 겹쳤다. 내가 만나 권면해보기도 했으나 그는 아무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으려는 것 같아 마음이 심히 아팠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돌리시고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1997년에 지인의 소개를 통해 한 네팔인 목사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네팔의 산골 출신인데 카트만두에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인도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고향 산골에 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특별히 그에게 관심을 갖고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가 한국에서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아세아연합신학대학(ACTS)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3년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데 방학이면 가족들이 있는 네팔의 고향에 다녀가면서 책값과 기타 예기치 않은 많은 경비를 지출하곤 했다. 공부를 마치고 네 팔로 돌아온 그는 네팔 교계에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해갔다. 그러던 그마저 사탄의 유혹에 빠져들어 여러 가지 불미스런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나는 마음이 심히 아팠다.

기대했던 두 네팔 목사의 실족으로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말씀을 상고하다가 가룟 유다에 관한 이야기를 묵상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대해 처음부터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를 끝까지 품어주셨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까지 순종하고 충성하신 것을 보며 많은 위로를 받고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기를 다짐했다.

네팔에는 그들 외에도 신학교를 통해 배출된 많은 목회자들이 전국으로 퍼져 복음 전파 사역에 임하고 있다. 졸업생 가운데 내가 아는 두 명의 목회자가 좀솜이라는 산골에 교회를 개척해 사역 중이다. 어떤 때는 동네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고, 전신에 멍이 들고 퉁퉁 부어 모교로 돌아온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하며, 재충전을 하도록 도와 다시 사역지로 돌아가서 사역을 계속하도록 돕고 있다. 귀한 목회자들이다. 나는 그런 현지인 목회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지 모른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서도 사역을 계속하는 그들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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