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괴로워도 웃고 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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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식으로만 살면 모가 나고, 정으로만 살면 우유부단하며, 의지로만 살면 답답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이야기요, 처세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못내 쓰리기도 하고 아픔을 참고 견디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치솟는 분노를 억제치 못해 이성을 잃은 채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도 있다. 대부분 필부의 삶은 그렇지 않을까. 이때 괴로워도 웃고 사는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보다 나은 가치를 이룩하기 위해 살아간다. 고귀한 가치란 원대한 인류의 희망을 위한 것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 한 예로 일제강점기 시대 청년인 윤봉길(25) 의사는 1931년 중국 홍커우공원에서 일본의 수뇌 히로가와(百川)를 암살했다. 그 현장에서 체포된 윤 의사는 그의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수뇌부 몇 명을 죽였다하여 우리나라가 당장 독립된 것이 아님을 나도 잘 안다. 20년, 혹은 30년 후 연합군의 승리로 애국애족의 정신이 강한 우리나라를 그들은 반드시 독립된 나라로 이룩해줄 것을 확실히 믿기에 이 한목숨 조국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애국애족의 정신인가. 기독교인 역시 신사참배 거부로 끝내는 죽음으로 항거했다.  오늘날 필부의 삶도 그리 평탄치만은 않다. 지난날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 기독 써클을 조직해 첫 모임을 가지려 할 때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은 물론 동료, 직장,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힘이 미치는 한 인류 세계평화를 위해 온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싶어서였다. 그때였다. 그럴싸한 이유를 내걸고 기도의 모임을 강하게 저지하는 자들이 있었다. 단체장의 결재마저 묵살해 버린 그의 기세와 파워는 대단했다. 나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조용히 말씀을 묵상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도모하라.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부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 12:14~21)

“~하라” “~말라”라는 금지 명령형으로 말씀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어찌 순종하지 않겠는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광막한 허허벌판에서 홀로 서 있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 마음의 벽을 타고 흐르는 이 음성은 과연 누구의 음성이란 말인가. 분명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출근 30분 전인데 집 전화벨이 세차게 울린다.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어제 반대했던 그분이었다. “어제 참으신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기도회 모임을 추진하십시오. 어제 미안했습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놓았다. 괴로워도 웃을 수 있는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눈물이 핑 돌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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