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소문난 진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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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나는 한국해외의료선교협회 (KOMMS, Korea Overseas Medical Mission Society)의 요청으로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었다. 1986년 여름에 첫 사역지인 네팔에서 3년 반의 사역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기도하면서 다음 사역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그럴 때 KOMMS로부터 방글라데시로 가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나로서도 방글라데시는 전부터 가고 싶은 나라였다.

방글라데시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아시아에서는 네팔 다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곳이었다. 나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Dacca)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통기(Tobgi)라는 지역의 난민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방글라데시의 기근으로 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생기자 정부는 통기 지역에 그들을 수용했다. 나는 이곳에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로서 내가 가장 존경하던 고허번 선교사를 다시 뵙게 된 것이다. 고 선교사님은 통기에 일찌감치 통기 진료소(Tobgi Clinic)를 세워두셨다. 놀랍게도 나는 선교사님 바통을 이어받아 진료소를 책임지게 되었다. 

난민촌 사람들의 삶은 몹시 비참했다. 거의 모두 참대로 엮은 벽을 이어서 집을 짓고 살며, 대부분은 무슬림(muslim)이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그들을 살폈고 섬겼다.

이듬해 이 지역에 대홍수가 발생해 국제공항마저 일주일간 기능을 잃을 정도의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 홍수 피해를 알아보기 위해 나는 직접 현장에 나가 주민들의 형편을 파악하고, 집을 복구하고, 틈나는 대로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환자들을 데려다가 치료해주기도 했다.

나는 진료소 사역뿐 아니라 한인교회를 통해서도 이동진료와 이재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다섯 명 이하의 가족과 여섯 명 이상의 가족을 위해 두 종류크기로 구호품 주머니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목사님과 나는 40명 내외인 온 교우가 힘을 합쳐도 사흘은 작업해야 할 분량이라고 교회에 광고를 했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거의 다 동참해서 밀가루를 뒤집어써 가면서 구호품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교회는 행정부를 통해 구호품을 전달할 대상 지역을 선정했다. 특히 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지역 가족 수를 파악해 티켓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일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날짜를 정하고 구호품을 싣고 마을로 들어가는데,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환영하는 뜻으로 ‘한국 교회가 우리를 도우러 오고 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마을 입구에 달아두었다. 그것을 보면서 구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널리 전해지기를 기도했다.

군인과 경찰의 도움을 받아 식구가 다섯  명 이하인 가족과 여섯 명 이상인 가족을 구분해 앉게 했다. 그리고 질서정연한 가운데 아무런 사고 없이 구호품을 잘 나눠줄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였다. 거저 주는 일도 쉽지 않다.

나는 진료소에만 머물지 않고 수시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특별한 환자가 눈에 띄면 병원에 데리고 왔다. 한번은 등에 직경3센티미터쯤 되는 혹이 기둥처럼 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냥 두면 암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불편하고 위험한 걸 왜 여태 그냥 두었어요?”

나는 기가 막혀 물었다.

“돈이 없어서요.”

그를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국소 마취를 한 다음 감쪽같이 도려냈다. 그러자 나와 진료소는 난민촌 안에 금세 소문이 났다. 난민촌뿐 아니라 외지에까지 소문이 퍼졌다.

한번은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안고 진료소를 찾아왔다. 사는 곳을 물으니 난민촌 사람이 아니었다. 상당히 먼 곳에서 온 것이다. 오는 동안에 병원도 많고 약국도 있었을 텐데 왜 이곳까지 왔느냐고 했더니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아이가 아파 소아과를 여러 군데 전전했는데 좀처럼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손으로 아기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진찰해보았다. 아기가 자지러졌다. 나는 아기를 세운 채로 만져보다가 관장(灌腸)을 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애비오제’를 갈아 먹으라고 했다. 애비오제는 요즘은 거의 사라진 어린이 영양제이다. 장 속에 묵었던 변이 사라지고 영양 공급을 받은 아기는 금세 회복되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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