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되면 손에 손 마주잡고 예배당으로 몰려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씀 듣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성경학교를 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1960-1990년대까지 주일학교를 비롯해 교회마다 그야말로 말씀의 도가니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씀의 부흥과 가난했던 한국 사회의 부흥이 정비례 했던 것이다. 말씀교육은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결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런데 이 성전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과 짝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1900년대 초반부터 하와이 사탕수수 밭을 필두로 전세계에 이민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일본인들은 2-3명만 모여도 조합을 결성했으나 우리 선조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워 다음세대에는 국권을 찾고 역전되리라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짐승같은 삶을 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히브리 백성은 바로를 위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다.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선민 이스라엘은 번성하였다.(출 1:7) 급기야 애굽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하기를 아들이거든 나일강에 집어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명령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히브리 한 가정이 탄생되었던 것이다.(출 2:1)
레위지파는 성소를 위해 성별된 지파로서 ‘하나님과 연합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레위의 손자요 고핫의 아들이다. 아므람(Amram)은 ‘고귀한 사람, 찬양받는 백성’이라는 의미이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Jocehbed)은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란 의미이다. 부부가 하나님과 연합하고 부부가 오직 하나되어 믿음으로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 가정을 가장 어려운 핍박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창조적 소수의 반열에 세워 주셨던 것이다.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과 연합한 이 시대에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영원한 1천년 대계인 말씀 교육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첫째,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곧 죽음을 상징한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 1:1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히브리 산파들은 놀라운 은혜를 입는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 1:20-21)
둘째, 자녀를 말씀으로 키우는 것을 생명 걸고 순종하여야 한다.
오늘날 교회 중직자들의 자녀들이 얼마나 많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모세의 울음 소리가 커지자 아므람과 요게벳은 생명을 걸고 갈대상자(테바)를 만들어 갓난아이를 태워 내려보냈다.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이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갈대(Kanon)는 당시에 자(尺)로 사용되었으며 성경의 원어이다. 그렇다. 우리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말씀에 태워야 한다. 갈대 사이의 빈 공간은 역청(헤마르)과 나무진(제페트)을 칠해 방수 코팅하였던 것이다. 역청은 진흙을 의미하고 나무진은 오늘날의 아스팔트 원액이다. 갈대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는 말씀이며, 역청과 나무진은 성령으로 빈틈을 메우라는 의미이다. 교회의 생명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에 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그렇다. 하나님의 기업(시 127:3)인 다음세대가 말씀의 인도(시 119:105)를 받고 성령보다 앞서지 않는 사명자로 하나님께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세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자.
위와 같이 아므람과 요게벳이 3남매를 키웠을 때 하나님은 이 가정을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미리암은 ‘지극히 존귀한 귀부인’이란 의미의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여선지자로 쓰임을 받는다. 아론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로 430년간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는 최초의 대제사장으로 쓰임받는다. 모세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는 의미로 불려졌으며, 모세는 선지자로서 애굽의 바로왕과 그의 군대를 홍해에 몰살시킨 당대 가장 큰 나라의 왕을 이긴 왕중왕으로 쓰임받게 되지 않았던가? 모세가 조그만한 갈대상자에 부모의 믿음에 의해 홀로 탔지만 갈대상자에는 200만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 은금보화, 더나아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곳에 함께 하셨던 것이다.
말씀교육에서 선지자, 제사장, 왕중왕 즉 그리스도의 3중 직분이 성취되지 않았는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오늘 조국 대한민국 교회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으며, 주저주저할 시간도 없다. 더 늦기 전에 철저한 테바 신앙에 먼저는 자신의 몸을 태우고 자녀들을 태우자. 오늘도 구슬 땀을 흘리며 영원한 1천년을 준비하는 교사들이여, 부모들이여 힘을 내자. 임마누엘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 다시 한 번 열방의 제사장 나라로 쓰임받는 대한민국 교회가 되라고 우리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서 응원하고 계신다. 아멘.
이중관 목사
<샘물교회, 익산노회 전노회장, 익산시기독교연합회 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