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는 8월 달력엔 15일 광복절 표시는 있으나 29일 국치일 표시는 없다. 우리 국민이 힘이 있고 똑똑하고 얼차렸으면 광복절 국치일 두 날은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 구한말 고종이나 대신들이 슬기롭게 힘있게 대처했으면 열강의 틈바귀에서 나라를 지켰을 것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를 거둔 일본이 그들의 야심을 드러내며 당시 조선 간섭에 앞장섰다. 일제는 이등박문을 통해 을사오적과 함께 통감부를 설치하고 2대 총독 소네도 매국노 이완용과 함께 정미7조약으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도 해산했다. 순국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는 “나라 팔아 먹은 이완용이가 미운 게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도록 가만 둔 당시 2천만 동포가 더 밉다”고 짚신겨레의 심장을 찔러 말씀하셨다.
나라의 실권을 쥔 이완용은 1910년 8월 4일 측근 이인직 (신소설 ‘혈의 누’ 작가)을 시켜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 미도리에게 보내 조속한 한일합방을 제의했다. 고마쓰는 훗날 그의 저서 ‘조선합병이면사’에서 “그물도 치기 전에 물고기가 뛰어 들었다”고 말했다. 그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은 대한제국 총리대신 자격으로 일본 3대 통감 데라우치와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이로써 조선조 27왕 519년 나라는 망했다. 나라 잃은 비극 속에 순종과 대신 궁녀들까지 얼빠진 훈장잔치를 베푸는 꼴을 보고 일본은 한국 의병들이 겁나서 미루던 한일합방 날짜를 22일에서 순종의 칙유문을 통해 8월 29일로 우리의 경술국치일을 한일합방일로 세계에 알린 것이다. 이후 34년 14개월 11일 약 35년간 우리 짚신겨레는 일제의 게다발에 짓밟히며 악랄한 압박과 설움을 받았다.
하나님 은혜로 우리 독립투사들의 희생 및 순국투쟁과 연합국의 승리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금방 남북분단 비극과 6.25전쟁의 참화를 겪고 아직도 남북은 155마일 휴전선을 두고 총칼로 맞서고 있다. 이런 사실을 예감하듯 일제 9대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1875-1953)가 맥아더 장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우리 짚신겨레에게 뼈있는 말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패망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여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돌아온다.” 하나님 원자탄 두알의 불세례 심판으로 패망한 일제 마지막 조선 총독이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35년간 철저히 심어 두었다고 우리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을 했다. 오늘의 우리 현실을 보면 북한의 김씨 3세 세습 공산정치에 대한의 자유민주정치로 대치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나라 통치로 오늘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나라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 무분별한 야당의 탄핵정치가 어지럽기 그지없다.
자랑스런 한글세대가 풍성한 금메달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애국가를 높이 외치는데 여야 정치인들은 정쟁에만 눈이 어두워 우리 꿈나무들 미래도 다 장님인 듯 보인다. 어차피 우리 겨레가 어리석어 만든 국치일 광복절을 해마다 맞이하면서 더욱 힘세고 잘 사는 나라로 세워 가야 할 것이다. 아베 노부유키 조선총독 일본인 말대로 일제 식민교육 때문에 노예적 삶을 사는 비극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한글나라 한국이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했다. 우리는 독도침략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일본을 언제나 경계하며 남북자유통일을 속히 이루고 우리 대한 하나님 축복 받는 세계 으뜸나라 복음 으뜸나라로 힘차게 발전시켜 나가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