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고 믿음의 깊이도 아주 얕은 평신도가 성경의 그 오묘함을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하지만 우리 인간은 똑같은 배은망덕을 판박이처럼 반복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도 징계하시다가 결국에 가서는 불쌍히 보시고 다시 용서하고 감싸 안아서 일으켜 세워주신다.
조건은 한 가지, 회개할 때이다. 아니, 어떤 때는 회개하지 않아도 긍휼히 보셔서 완전 진멸 직전에 아주 가느다란 빛을 비추신다. 우리의 보은은 오직 순종과 회개였다.
점심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날은 저녁을 거의 먹을 수가 없다. 약을 먹어야 하니 간단한 요기는 해야겠기에 떡 조각 하나 먹고 말기 일쑤다. 영양 균형이 깨질까 염려되어 치즈 한 조각을 베어 문다. 순간 이 요상한 물건을 처음 대했던 1953년 7월 말경으로 돌아간 어린 소녀가 청승을 떨고 추억에 잠겨있다. 어느 날 각 집으로 작은 상자 하나씩이 전해졌다. 그 당시로는 처음 보는 상자라 함이 맞을 것 같았다. 사과 등속의 과일은 나무 궤짝에 담겨 오고 다른 것들은 자루에 담겨 오기 때문에 작기는 하지만 이렇게 탄탄하고 고급스러운 상자는 처음이었다. 심상찮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여는 일하는 언니 옆에서 목을 늘이고 들여다보던 어린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생 처음 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어서이다. 초코렛이 있었던가 없었던가는 기억이 희미하고 앙증맞게 작은 깡통들이 여러 가지 들어 있었고, 처음 보는 아주 작은 포장들이 들었는데 찢어서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것이 사람을 홀릴 만했다. 그러다가 어떤 것을 뜯어 먹었는데 소태 같이 써서 기겁을 하고 물을 들이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커피라는 것과의 처음 만남이었다. 군용 c레이션(전투식량)이라는 걸 안 것은 한참 자란 후다.
그해 7월 27일의 한국전쟁 휴전 협정을 기해 한국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미국의 선물이었다는 얘기를 뒤에 듣고 씁쓸했던 기억은 지금도 씻겨지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오직 북진을 설득하고 맺어졌다는 휴전 협정, 그것이 71년이나 되도록 우리 허리를 졸라매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게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어찌 됐든 우리는 군사 지원을 비롯한 우방국의 여러 가지 지원으로 한국전쟁을 치렀다. 우리는 그에 상응한 보은을 했는가? 순종, 회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