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간에 호칭을 보면 두 사람 간의 친밀도를 알 수 있다. 호칭과 억양 속에 쌍방의 모든 관계성이 녹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표정이나 호칭을 관찰해보면 친밀도가 나타난다. 서로 호칭만 잘 사용해도 관계가 좋아진다. 사랑과 배려가 깃든 호칭을 한다면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밤낮이 즐거울 것이다. 사랑도 깊어지고 이혼할 사유도 사라질 것이다.
부부간에도 처음에는 오빠, 자기야, 서방님, 여보, 당신으로 부른다. 그러다가 이 웬수, 짐승, 영감태기가 되고 영식씨, 삼식이 같은 젖은 낙엽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부부간 호칭과 지칭은 다양하기도 하다. 남편 호칭에는 오빠, 자기야, 여보, 당신, 서방님, 영감, ~아빠, 바깥양반, 남편 등이 있다. 아내 호칭과 지칭에는 자기야, 여보, 당신, ~ 씨, 아내, 임자, 와이프, 마눌, 안댁, 집사람, 안사람, ~엄마, 색시, 안주인, 내자, 제댁 등 많기도 하다. 나아가 여편네, 부엌데기, 마누라 등 천박스런 표현까지도 있다. 경어도 있고 비속어도 있다. 부부간에 자기 배우자를 서로 호칭할 때와 제 3자에게 지칭할 때의 말이 달라야 한다.
나도 신혼 초 아내를 어떻게 불러야 할 줄 몰랐다. 여보라고 부르기에는 생경스럽고 어색했다. 부르기는 해야 하고 “저기요”, “여기 좀 봐요”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헬로야”그랬더니 “나 헬로야 아니거든요”라길래, 다시 “여보야” 하니 여보야도 아니란다. 요즘같이 “자기야” 혹은 “오빠”라고 쉽게 부르면 될 것을….
우리 세대에는 남친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은 결혼 전 “오빠”라는 말이 통상어가 되었다. 결혼 후에도 그 감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당분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내 딸은 55세다. 그런데도 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들을 때마다 멋쩍어 지청구를 해도 고쳐지질 않는다. 내 딸이 환갑이 되고 70대 80대가 되어도 오빠라고 할까 염려스럽다.
내 아내보고 나한테 오빠라고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ㅂ~빠~~” 코맹맹이 소리로 느려 뽑더니 깔깔 웃는다.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 그래 두 사람이 자지러지게 웃고 넘어졌다.
7080 할머니가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면 낭만적일까? 주책일까?
호칭에는 시류가 있다. 그러나 시대와 세대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여보”이고 “내 아내”가 좋다. 여보는 “여기 좀 보세요”, “나 좀 보세요”의 준말이기도 하다. 또 한자로는 보배와 같은 소중한 사람(如寶)이나 보배와 같은 여인(女寶)이라는 뜻이 있다.
방송인이나 공인이 자기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집을 지키는 수호신인가? 아내가 집사람이면 나는 바깥사람인가?
나도 내 아내를 처음에는 집사람으로 표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아내가 정색을 하고 요청을 했다. “집사람이라고 하지 말아요. 집사람이라면 집에만 붙어 있는 사람 같고, 집 귀신같은 어감이에요.” 그 후로 나는 집사람이라는 말을 버렸다. 그리고 “내 아내”라는 지칭을 꼭 쓰고 있다.
그래 우리 집에는 집사람이 없다. 마누라도 없다. 아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거의 매일 설거지를 한다. 자주 자주 빗자루와 걸레도 잡는다. 젊었을 때 안하던 것도 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만약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노발대발 격노하실 것이다. 그래도 즐겁다. 우리 모두 “내 아내”라는 말만 쓰기로 하자. 호칭이나 지칭만 잘해도 품격이 달라 보인다. 부부간 사랑도 깊어질 것이요, 방 빼라는 말도 없을 것이니….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