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가 끝나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점심 시간이 된 듯했다. 해는 중천에 떠올랐고 개는 내 곁을 왔다갔다 했다. 언제쯤 나를 불러내서 맛있는 부침개도 주고 고깃국에 밥을 말아 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그 집 사돈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이제 먹을 것을 주려나 보다 하고 기대에 부풀어 앞뜰로 나갔다. 그런데 밥은 커녕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큰 낫과 지게를 주면서 소 먹을 풀을 베어 오라고 했다. 나는 풀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낫을 잡아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얻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 쭉 걸어가면 산이 있는데, 그곳은 뱀도 나오고 풀들이 우거진 곳이었다.
한 지게를 베어 와야 먹을 것을 준다고 했다. 어떻게 풀을 베어서 지게에 담을지 자신이 생기지 않았지만, 낫을 들고 풀을 깎으려고 시도하다가 그만 왼쪽 둘째손가락을 베었다. 피는 멎지 않고 계속 나왔다. 옆에 큰 참나무가 있었다. 참나무 잎을 뜯어서 벤 손가락에 감고 한참 있자 피는 멎었다. 배는 고프고 내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다.
나는 그때 어린 마음에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바지 끈을 풀러 나의 목을 졸랐다. 그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죽지 마라! 네가 자라서 옛 이야기하고 사는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상해 죽으려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는 동안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나를 데려다 준 사돈 할머니와 고모의 아들이 왔다. 풀 포기 하나 베어 놓은 것 없는 것을 보더니 그 할머니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산 속에서 죽도록 때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 살려 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누가 와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팔뚝과 종아리는 고무줄을 감아 놓은 것처럼 부풀어 올라왔다. 실컷 때리고 나자 나를 집으로 데려 왔다. 집에 데려다 놓고 마루 끝에서 물에 밥을 말아 부침개 몇 조각을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고모와 할머니는 내 곁에 앉아 밥 한 숟갈 올라갈 때마다 “그거 먹고 막혀 죽어!” 하면서 번갈아 가며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 밥을 다 먹고 오늘밤에는 내 스스로 죽으리라 다짐했다. 깊은 밤 그 집 식구가 잠든 사이 앞마당에 있는 우물에 가서 머리를 안으로 집어넣고 거꾸로 들어가려고 했다. 물이 이마까지 닿았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가 죽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참아라. 어서 빨리 나오너라.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 왔다. 누가 내 발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우물에 빠져 죽으려던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낫에 다쳤던 손에 염증이 생겨 퉁퉁 부어 올라오고 통증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 그 동네에 연세가 지긋한 노인 한 분이 나의 다친 손을 보더니 “독이 들어갔구나” 하시며 쑥을 한 움큼 가져다가 비벼서 불을 붙여 내 손가락에 대 주면서 쑥 기운을 쐐 주는 것이었다. 그 손가락이 어찌나 아프던지 지금도 왼쪽 둘째손가락에는 그 흉터가 남아 있다.
그 할아버지는 여러 날 그렇게 해주었다. 만일 그때 쑥 치료를 안했더라면 그 손가락에 독이 들어가 잘라내어 점자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까.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날들이다.
눈먼 조카를 죽이려는 음모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엄동설한이 닥쳐왔다. 1950년 그 해 겨울은 여느 해보다 더 추웠고 또한 눈도 많이 왔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나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단 한번도 그 해 겨울은 따뜻한 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마루 위에 가마니를 깔아 놓고 쌀 포대를 이불 삼아 덮고 그 추운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어떤 날은 너무도 추워서 불 땐 아궁이에 발을 들여놓고 잔 적도 있었다.
1950년 12월 22일.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오를 무렵이었는데 나는 떠나기 전날 밤에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다. 고모네는 그 많은 쌀과 밤을 수확해 놓고 피난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막상 눈먼 조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더 큰 골칫덩어리였던가 보다.
“우리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피난을 가고 늙은이들은 집안을 지키기로 합시다. 그리고 선태 저 녀석은 집에 둘 수도 없고 데려갈 수도 없으니 내일 아침에 평상시보다 밥을 두 배 주면서 빨래하다 남은 양잿물을 밥 속에 넣어 죽여 버립시다. 죽으면 산에다 파묻어 버리고 떠납시다.”
그 얘기를 우연히 들은 나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오직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집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하고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또다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