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의 사랑

Google+ LinkedIn Katalk +

창조주 하나님은 신묘막측하신 분이시다. 개미는 자기의 몸무게보다 50배나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고 벌은 자기보다 300배 더 큰 것을 운반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의 혈관 길이는 키가 170cm를 기준으로 약 12만 9천600km로 지구의 원주인 4만 8km의 약 3배에 달한다. 체중이 70kg인 사람은 약 5.2리터의 혈액을 가지고 있으며 골수에서 매초마다 약 2만 개의 적혈구를 생성한다. 적혈구의 수명은 약 120-130일이다. 뇌는 몸무게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산소량의 20%와 피의 15%를 사용하며 뇌세포는 1조 개 정도이며 우리 몸의 세포는 60조~100조 개이다. 인체의 뼈는 206개, 근육은 650개, 관절은 100개 이상이다. 이 모든 것은 좌우 대칭이 되어 있다. 한 뼈나 근육에 이상이 생기면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신묘막측한 인체를 하나님은 머리털까지도 다 헤아리고 계신다.

신비한 소우주의 인체운행이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다. 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돈다. 하나님의 눈은 지금도 온 땅과 사람을 관찰하고 계신다.

신묘막측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돌보시는가?

첫째, 만세 전에 나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5-16) 그것 뿐인가?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시 139:2-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할 때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입체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 아담 이후 죄악이 이 땅에 물밀듯 들어왔던 것이다. 사도 중의 사도인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는 말씀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였던 것이다.

바울은 갑자기 환희의 감탄으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주장한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자녀가 연약해져 있을 때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며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중보기도 하고 계신다.(롬  8:2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입체적으로 우리를 돌보신다는 증거이다.(롬  8:34-39)

셋째,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생명책에 기록한 즉, 예수 피로 값 주시고 사신 바 된 성령으로 인친 자녀를 세상 끝날까지 책임지신다는 말씀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에게 이제 미션이 주어졌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마 28:19-20)

이 막중한 미션을 어떻게 감당할까? 성경에 굳게 결심했다는 표현은 딱 1번 등장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바로 예수님의 굳은 결심이셨다. ‘굳게 결심하시고(스테리조)’의 의미는 ‘확고부동하게 고정하다, 대못을 박다, 결론짓다, 다시는 변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신묘막측하신 사랑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의 머리의 피는 가시관에 의해 쏟아지고, 예수님의 손과 발의 피는 대못을 박아 쏟아지고, 오장육부에 고여 있던 피는 한 병사의 창에 의해 쏟아졌다.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을 남기지 않으시고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다 쏟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다 이루었다’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적(神的) 선언을 하셨던 것이다.  ‘다 이루었다(텔레오)’는 안수하다, 성취하다, 지불하다, 결론짓다는 의미로서 우리를 영벌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왕 같은 제사장의 자리로 수직 상승 시키신 것이다.

이렇게 큰 사랑을 입은 사랑의 빚진 자들은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예수님의 굳게 결심하심이 곧 나의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가정과 교회와 민족 부흥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겠다고 고백하며 나가는 참된 제자가 되자.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음으로 성경을 완성하고, 나머지 열한사도는 모두 순교의 제물이 되어 온 인류를 복음화 한 것처럼 순교자적 자세로 심기일전하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중관 목사

<샘물교회, 익산노회 전노회장, 익산시기독교연합회 전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