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또 놓아버렸다. 올여름 들어 3개째다. 작은 일이 아니다. 예배가 끝나가는데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다. 우산이 없다. 목사님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데 생각만 했을 뿐 온통 정신은 우산을 어디다 놓아버렸는가에 쏠려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아아 화장실에다 놓고 얌전히 그냥 나온 거다. 이러기를 한두 번이 아니다. 책이고 떡이고 성경이고 가릴 것 없이 놓고 그대로 나온다. 손에 따로 들면 그 순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맨날 어깨에 메는 가방이나 등가방만 매달고 다니겠는가? 그 안에 넣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예배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내려갔다. 다행히 왼쪽 두세 번째 칸이었다는 기억이 확실했다.
까만 긴 우산 있는 것 없냐고 안에 대고 말하니 다 없단다. 한 칸은 사람이 나오기에 확인해도 역시 없다. 한 칸에 한 번 더 큰소리로 확인하고 허탈하게 나왔다. 혹시나 하고 관리실에 갔더니 비닐우산 몇 개만 매달려 있고 허름한 우산 몇 개만 서 있다. 혹시 비가 또 올지 몰라서 거기 비닐우산 하나를 관리인에게 얻어 들고 나왔다. 아아 아직도 교회에서조차 그깟 우산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싶어 서글펐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너스레 중에 질량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일생 중 행·불행이나 성취 실패 등이 공평하게 찾아왔다 간다는 것이다. 젊어서 물건을 거의 잃어버린 적이 없던 내가 수년 전부터 손에 든 것은 그냥 한 번 놓으면 그것으로 끝이 돼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성경책과 떡 상자를 나란히 전철 화장실에 놓고 나왔다가 문상을 다 마치고 나올 때야 생각이 나서 관리실에 갔더니 떡 상자는 없고 성경만 간수해 놓았다. 떡은 없더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기도했다. 아유 성경책도 가져가셔서 은혜 좀 받으시지 그랬어요? 떡 잘 잡수시고 건강하세요. 하나님 제가 얼마나 나눔을 못하면 이렇게라도 해서 나누게 해주십니까? 고맙습니다. 그 이후로 무엇을 잃으면 그렇게 기도했는데 오늘은 그 기도도 도망갔다. 장소가 교회여서 그런 것 같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날 때의 허탈감이 더 심하다.
교인들 손의 검정 긴 우산만 보면 유심히 눈길이 간다. 두어 번 들었을 새 우산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공연히 의심하고 정죄하는 이 교만을요, 제발!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