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교회의 갈등 영적 전투로 승리하다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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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제일교회는 故 이상양 전도사님이 설립한 교회이다. ‘뚝방마을 이야기’(김기복 저, 두란노)라는 책에서 잘 보여주듯이, 이 전도사님은 망원동에 피를 붓고 하늘나라로 가신 분이다. 내가 만난 한국교회 목회자, 나아가 그리스도인 가운데 최고의 성자 한두 분을 꼽는다면 이상양 전도사님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상양 전도사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이 받다 보니 교회는 받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김기복 목사님 등 내 앞을 다녀가신 목사님들도 많이 노력했지만 나도 간단없이 애를 쓴 목회가 교회의 정체 의식을 바꾸는 일이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우리는 연약한 교회라는 생각에서 건강한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 주는 일이었다. 건강한 정체 의식을 갖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총동원 전도 운동과 인도네시아에 송광옥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었다. 

복음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이요, 교회의 지상과제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딤전 2:4). 그 때문에 우리는 한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해야 한다. 복음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주의 백성들에게만 주신 은총이다. 내 곁에 있는 어떤 사람은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가 있다. 이때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는 죗값으로 죽으려니와 그 핏값을 내가 물어야 할 수 있다. 나의 복음 전도로 한 영혼이 구원받았다면 그 값어치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교회가 복음 전도에 당당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교회의 자산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망원제일교회는 갈등 상황을 파헤치기보다는 영적인 전투 총동원 전도를 선포했던 것이다. 

우리가 총동원 전도를 계획하고 있을 때 전국적으로 총동원 전도에 성공적 경험을 가진 몇 교회가 있었다. 인천 순복음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부교회 등이었다. 우리는 교회의 핵심 리더들을 모아 비전을 선포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선한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결단을 했다. 마침, 교회엔 35인승 버스 한 대가 있어서 손창원 장로님이 운전을 하고 인천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대전으로 전도 탐방을 다니는 동안 가슴에 불이 붙고 있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2박 3일 투어가 끝나는 밤을 유성 경하장에서 보내며 기도회와 세미나를 가졌다. 

그 세미나에서 우리는 150여 명 성도가 1987년 9월 20일 3천 명 초청을 결단했다. 표어는 「내 백성을 초청하라! 9월 20일 3천명!」 이었다. 전도 잔치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초청하는 잔치는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열 사람, 스무 사람을 초청하는 총동원 전도는 별로 실패해 본 적이 없다. 이것이 교회의 신비, 전도의 신비이다. 

교회로 돌아온 우리는 총동원 전도를 선포하고 40일 후 D-day까지 밥을 먹어도 전도를 위해, 잠을 자도 전도를 위해, 직장에 가도 전도를 위해 살았다. 총동원 전도 당일이 되기도 전 이 40일 동안 우리는 수많은 기적을 보았다. 기도 시간마다 임하는 성령의 임재, 자살하러 가던 사람이 교회로 들어오고 무당이 자기 발로 걸어오고 병들고 귀신 들린 사람들이 치유받는 역사가 매일같이 일어났다. 9월 20일 당일엔 8부 예배를 드리며 출석 카드를 내고 예배를 드린 사람이 4천200명, 예수님을 영접하고 결신한 사람이 1천50명, 이게 기적이 아니고 또 무엇인가? 현대판 사도행전을 우리는 보았다. 

망원제일교회의 총동원 전도 불길은 주안장로교회, 충신교회, 청북교회, 창동염광교회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다. 이때부터 나는 전도 간증, 전도 훈련을 다니느라 유명 강사, 부흥사(復興社)가 되어 가고 있었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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