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선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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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천주교와 기독교의 비교

인도네시아의 선교는 로마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671-679년 사이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으나 그 증거가 명확지 않다. 그 후 1323년 프란체스코회 신부들이 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선교는 그 뒤에 이루어졌다. 15세기 말에 스페인 사람과 포르투갈인이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이들은 상인을 동반한 선교사들이었다.

그 후 포르투갈인들은 1513년 Molucca에 첫 가톨릭 성당을 세웠으며 1522년에는 프란체스코 선교단이 스파이스 섬에 상륙해 할마헤라와 그 밖의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1534년에는 포르투갈 선교사가 도착했으며 1546년에는 프란시스 자베르가 도착해 약 1년간 선교 활동을 했다. 1562년에는 예수회의 도미니카회가 다시 선교사를 파송했다. 16세기말에는 이슬람교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서 가톨릭은 순교자를 배출하기도 했으나 5만 명의 신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의 역사는 네덜란드의 침략과 동인도회사의 설립으로 시작된다. 164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와 손을 잡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인도네시아에서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는 자국민 신자들과 혼혈아 신자들을 위해여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이들은 자국민 신자들을 위한 목회뿐만 아니라 원주민 대상의 선교활동도 위임받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기독교 국가이면서도 목사들이나 선교사들이 자바의 회교도 원주민을 선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샤머니즘이 강한 암본이나 술라웨시 등의 섬에서 선교할 것을 종용했다.

그 당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 영혼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1656년에 개혁파 교회가 제출한 인도네시아 선교활동에 대한 제안을 거절했다. 이들은 자칫 잘못하면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동인도 세금 수입의 주요 원천인 아름답고 부유한 자바 섬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 자바 섬에서 선교를 자제하게 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300여 종족이 살고 있지만 가장 많은 인구(약 7천500만)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족속이 자바인이기에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 있는 수많은 미전도 족속의 복음화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기독교 교회가 초기에 복음을 전하던 동인도회사 시대(1596-1799)에 자바 섬에 이미 있었으나 자바 그리스도인은 한 명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동인도회사는 자바 섬의 자바인에게만큼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바 섬에서 자바인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선교사나 목사가 아니라 평신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런 역사는 우리나라에 복음을 처음 전한 것이 고려문에서 로스와 더불어서 성경을 번역한 두 명의 청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유사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자국어 성경 번역이 한참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일본에서 누가복음을 번역해 언더우드가 입국할 때 한국에 성경을 들고 제물포항에 내린 것과 대조적이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은퇴교수,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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