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김철훈 목사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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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훈 목사의 순교와 연금봉 사모의 헌신

유족들을 위한 연금봉 사모의 기도와 봉사

“불의를 참지 못하는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었던 분입니다. 신사참배를 총회 가결할 때 김철훈 목사님이 옥고를 치르고 나오셨는데 교인들이 이왕 가결되었으니 적당히 타협하자는 제안에 끝까지 묵묵부답이셨고, 이에 교인들은 몸에 바늘 하나 들어가도 피 한 방울 안 나겠다고 말하면서 놀라워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생전에 목사님은 세상에 그만큼 기도한 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빌립보서를 즐겨 읽으셨습니다. 야산 바위에 올라가 밤에 기도하시다 밤 12시 되어서야 내려오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찬송가는 지금의 35장 ‘큰 영화로신 주’를 좋아하셨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철야하고 주일에는 온종일 금식하시기도 했습니다.”

연금봉 사모는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에서 출생했고, 경기 용인의 기흥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27세 때 당시 31세인 평양 신학생 김철훈과 결혼했다. 김철훈 목사 순교 후 1950년 12월 어린 자녀들과 함께 대동강을 건너 월남한 후 충북 보은과 부산 등지에서 살다가 1952년 12월 부산 다비다모자원의 원모로 봉사했고, 1954년 2월 상경해 순교자 유족회장으로 봉사했다.

그해 4월 경북 안동에서 거행된 제39회 총회에서 회장 자격으로 유가족 자녀 교육비 보조를 청원해 총회 석상에서 연보 5만 환을 보조받았고, 그해 가을에는 순교자 유족의 집인 순혜원을 건립했으며, 1956년에는 서울 산정현교회를 창립했으며, 1960년부터 그 교회 전도사로 봉사했다. 이어 그녀는 영세교회 전도사를 거쳐서 1980년대에는 영세교회 명예 전도사로 추대되었다. 연금봉 전도사의 소원은 순교자 유족들을 위한 모임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순교자 김철훈 목사의 자녀 손들의 면면을 보면 순교자의 피가 헛되지 않고 교회의 자양분과 씨앗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철훈 목사 내외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사모는 남편이 다하지 못한 복음 사역에 여생을 바쳤다. 장남 김기영은 숭실대학교와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목회자가 되었고, 장녀 김명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영세교회 이금세 장로와 결혼했으며 권사로서 봉사하고 있다. 차녀 김성희는 경희대 음대와 장신대학원 기독교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산정현교회 장로이며, 유치원 원장으로 어린이 사역을 펼치고 있다. 

순교자 김철훈 목사의 거룩한 순교의 피는 대대손손 면면히 흘러 한국교회의 한 편을 환히 밝히고 있다.

김철훈 목사 유족으로는 연금봉 사모, 아들 김기영 목사, 장녀 김명희 권사, 맏사위 이금세 장로, 차녀 김성희 장로가 있다. 

김철훈 목사의 순교 피가 헛되지 않게 충성하는 유족들이다. 그중에서도 김철훈 목사의 사모 연금봉은 목사의 아내로서 너무나 훌륭한 열매를 맺었다. 

순교자 유족들을 위해서 쌓은 그 노력은 기도와 열정의 믿음으로 많은 인재를 키웠으며, 순교자 유족들이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총회에 호소하므로 많은 위로를 받게 했다. 여기에 특별히 귀기울여 들어주시고 도와주신 분은 한경직 목사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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