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서른세 번  도전 끝에 이룬 신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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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모험 (1)

죽음에서 삶을 위한 탈출 

일어나 여기를 떠나라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부모님과 할머님께서 아무리 교회를 못 나가게 말려도 주일만 되면 주일학교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때문에 고모 집에서 끔찍한 초달(楚達)을 받으면서도 나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 당시 나를 가르쳐 주셨던 분이 바로 표재환 선생님이시다. 왕십리중앙장로교회에서 오랫동안 장로님으로 봉사하시다가 목사님이 되신 그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권하시며 열심히 신앙 생활하라고 강조하셨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주님께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살려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와 같이 앞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그 당시 나의 기도는 정말 간절하고 긴박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선태야! 안심하거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일어나 여기를 떠나거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탈출했던 것처럼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짚신을 신고 쌀자루를 등에 지고 지게 막대기로 지팡이를 삼고 캄캄한 밤에 대탈출의 길을 나섰다. 아! 그 무섭고 떨리던 밤. 나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큰 행길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온몸은 추워서 얼어붙은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등과 손발이 뜨거웠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신 사랑이었다.

그때 일을 생각해 보면 온몸이 오싹해진다. 그 사망과도 같은 골짜기를 벗어나는 길목에는 음산한 무덤들이 었었는데 여우와 늑대가 나오는 무서운 곳이었다. 여우와 늑대 소리를 들으면서 산 너머 원두막을 지키던 일이 기억난다. 고모 집은 산 너머 밭에다 참외를 심었는데 밤이면 가끔 나를 그곳 원두막으로 보내 잠을 재우곤 했다. 그런데도 내게 참외 한번 먹으라고 주는 법이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가 부잣집에서 살면서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저절로 생각났다.

‘아! 하나님, 그때 왜 저를 그렇게도 초달하셨습니까? 그렇게까지 제가 호되게 훈련받지 않았다면 시각장애인선교란 어려운 사명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까? 지옥 훈련을 통해 내가 부활의 신앙에 이르렀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950년 12월 22일 필사의 대탈출

그 날 밤 나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교회에서 배운 어린이 찬송을 부르면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밝은 등불이에요/반짝반짝 빛나며 하시는 말씀/너희들은 세상 빛이 되어라/너희들은 세상 빛이 되어라”

내가 찾아 나선 큰길에 이르자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다시 저들에게 잡힐지 모르기에 피난민 대열에 묻혀서 남으로 멀리 달아나야만 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쫓아 달려오는 애굽 병사들을 의식하듯이 나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얼마를 걸어갔을까. 열 살 난 내가 그 밤에 달려간 길은 족히 사오십 리는 될 것 같다. 그 날 밤에 나는 당찬 결심을 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옛 고향집이나 친척들에게로 돌아가거나 의지하지 않으리라. 그때 그 일은 항상 내가 의지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되면 그 즉시 그곳을 떠날 수 있는 신앙의 결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수없이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바로 1950년 12월 22일의 대탈출과 모험을 통해 얻어낸 교훈이라고 말이다.

얼마나 고달프고 정처 없는 탈출의 길이었던가. 소달구지를 밀면서 온통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려갔던 피난길은 멀기만 했다.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미지의 세계는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나는 피난민 대열의 거대한 인파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고독한 나뭇잎처럼 그렇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주님은 내가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노릇을 감당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나의 부모와 친척들과 형제 자매들에게 탈출하게 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무소유한 자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처럼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살아 나가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자신이 선택되고 부름 받았음을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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