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선각자 남궁억(南宮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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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사회운동과 신앙

남궁억 선생이 작사한 ‘삼천리 금수강산’은 우리 찬송가 책에 수록되어 널리 불리우는 애창곡이다. 개화기인 1907년에 작사한 이 가사는 독립운동과 개신교 선교사업 등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품이었다. 

이 가사는 독립과 자존을 갈망하는 조선인에게 상징성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놀란 조선총독부가 1937년 3월 이 찬송가를 금지곡으로 명령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이 찬송가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삼천 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반복)

1.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2. 봄 돌아와 밭 갈 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3. 곡식 익어 거둘 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후렴 : 일 하러 가세 일 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강산에 일 하러 가세.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하라”(마 9:37-8)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당대의 민족을 향한 각성과 계몽적인 가사 내용이었다. 

그가 남긴 또 한 편의 시 ‘기러기 노래를 읽어 보자.

원산석양(遠山夕陽) 넘어가고 찬 이슬 올 때

구름 사이 호젓한 길 짝을 잃고 멀리 가

벽공(碧空)에 높이 한 소리 처량

저 포수의 뭇 총대는 너를 둘러 겨냥해

산남산북(山南山北) 네 집 어디 그 정처 없나

명사십리 강변이 간/청초 욱은(우거진) 호순가

네그 종일 훨훨 애써서 찾되/내 눈앞에 태산준령

희미한 길 만리라(하략)

감성적 순기능을 살려 쓴 서정시이다. 이 작품에도 그의 신앙적 바탕이 깔려있다. ‘원산 석양 넘어가고’로 시작된 이 작품은 8·5조(4·4·5)의 운율로 된 형식이다. 

묘사한 시어들은 우리말을 잘 활용한 것이다. 초창기에 국한문을 섞어 쓴 수사(修辭)가 현대의 서정시 표상법에도 잘 처리한 것이다. 남궁억의 시재(詩才)를 가늠할 수 있는 시구이다. 

  주일학교 교가(모곡국민학교 교가)

1) 동막산과 강 구비 앞뒤 둘렀고, 모곡구역 모곡리는 우리 집이라,

세상 영화 누릴자는 우리들이며, 그 가운데 뜻 부칠 손 주일학교라

2) 금동네야 모여서라 세 동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어 입적한 우리, 구주님의 은혜를 더욱 감사해, 천국낙도 바라보는 십자 동무야.

고향 서면 모곡학교의교가겸 주일학교교가로 지은 가사이다.(1, 2절) 

그는 선친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으로 낙향해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나라꽃인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기도 한 선각자였다. 직접 세운 모곡국민학교와 강원도 일대의 각급 학교에도 무궁화 꽃을 심었다. 이와 함께 ‘무궁화동산’이라는 창가 가사를 지어 전국에 퍼뜨렸다. 이것이 총독부의 심기를 건드려 강원도에 교회와 학교에 심은 무궁화 꽃을 모두 불태우거나 뽑아버렸다. 그는 1933년 11월 4일 다시 투옥되었다.

투옥 이듬해에 윤치호 선생의 설득으로 병보석으로 나와 요양 중에 사망했다.(1863. 12. 27.~1939. 4. 5.)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저서로 <동사략> <조선이야기> <신편언문예법> <조선어문법> 등이 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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