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세상에 무섭지 않은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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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은 두메산골이어서 그랬는지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한파(寒波)가 견디기 어려워 겨우 내내 추위에 대한 공포감으로 지내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시골집은 외풍(外風)이 심해서 얼굴까지 이불로 덮어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으며 안방 윗목에 놓아둔 걸레가 다음날 아침 냉동실에서 꺼내온 동태처럼 꽁꽁 얼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이가 80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추위가 문제이지 더위는 아무리 심하다 해도 견딜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지켜왔는데 금년에 경험해 보니 “아니올시다”하는 반전(反轉)에 이르렀다. ‘더위’도 ‘추위’만큼이나 견디기가 쉽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한학(漢學)에 있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선생에 버금가는 진혼(震魂) 김정련(金正連, 1895~1968) 은사에게 고등학교 3년간 한문을 배운 것을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스승님의 가르침이 한자와 한학에 대한 동기부여(動機附與)가 되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으며, 연전(年前)에는 성경에 나온 모든 난해한 한자어를 우리말과 영어로 풀이하는 《성경한자용어사전》을 출간할 수 있었으니 이는 모두 은사님의 정성어린 가르치심의 덕분이라 믿고 있다. 

그 어른께서 말씀해 주신 말씀 중에 “세상에 무섭지 않은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하나가 ‘입춘(立春)지난 추위’요, 둘째가 ‘처서(處暑)지난 더위’이며 셋째가 ‘60지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근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은사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언급하였거니와 겨울철의 추위가 견디기 너무 힘들어서 마음속으로 ‘입춘’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다만 세 번째 ‘60지난 사람’의 항목은 사람의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60’에 ‘20년’을 더하여 ‘80지난 사람’으로 정정(訂正)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말의 본 취지(趣旨)는 나이가 60이니 70이니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노인들은 아무래도 하강곡선(下降曲線)을 그리는 분들이므로 이제 더 이상 크게 기대할 것이 없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가 무섭다는 말이요, 젊은이들이 큰 잠재력(潛在力)을 가지고 있음을 이르는 말일 터이다.   

어린 시절, 새벽잠이 없던 나는 동생과 함께 달력에 적혀있는 ‘입춘(立春)’으로부터 시작해서 ‘대한(大寒)’으로 끝나는 ‘24절기(節氣)의 명칭’을 경쟁하듯 암기해서 지금도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의 노랫말처럼 줄줄 외우고 있다. 그동안 한 가지 내가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이 있다. ‘24절기’를 당연히 ‘음력 절후(節侯)’로 알았는데 사실은 태양의 황경(黃經=태양의 기울기)에 맞추어 1년 열두 달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서 절기를 구분한 것이다. 즉 ‘24절기’는 ‘달[月]’을 기준으로 한 ‘음력 절후’가 아니라, ‘태양[日]’을 기준으로 ‘양력 절기’가 된다. 

지구온난화(地球溫暖化)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금년의 더위는 유난히도 심하다.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처서(處暑)는 태양이 황경 150도에 달한 시각으로 양력 8월 22일 또는 23일경에 해당한다. ‘24절기’는 중국의 계절을 기준으로 했으므로 한국의 기후에 꼭 들어맞지는 않을 때도 있다. 또한 날짜가 경도(徑道)에 따라 변하므로 매년 양력은 같지만 음력은 달라진다. 음력 날짜가 계절과 차이가 많이 날 때는 윤달[閏月]을 넣어 절기와 알맞게 조정을 한다.

지난 8월 7일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절기였고 8월 14일이 ‘말복(末伏)’이었지만 여전히 폭염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幾微)도 없이 막무가내다. 그래도 염려할 것이 없다. 내일 모레가 ‘처서’이고 “처서지난 더위는 무섭지 않다”고 말씀해주신 옛 스승님의 말씀이 맞다고 믿기 때문이다. 금년의 처서(處暑)는 8월 22일이니 며칠만 지나면 폭염도 고개를 푹 숙이고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처서(處暑)’는 한자어로 “더위를 처단(處斷)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집에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어도 더위를 극복하는데 고생하시는 분들께서는 ‘처서’ 절기까지 며칠만 더 기다리시라. 아마도 그날부터는 주무시다가 본능적으로 ‘이불’을 찾게 되실 것이외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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