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방글라데시 새마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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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 선교사인 장순호 목사와 동역하며 초교파 선교 기구인 방글라데시개발협회를 만들었다. 영어 약칭으로 KDAB(Korea Development Association in Bangladesh)라고 하는데, 방글라데시 정부에 등록을 할 때는 방글라데시를 개발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취지의 사회복지 개발 기구임을 강조했다. 주로 하는 사역은 농업, 교육, 의료 사업 등 방글라데시 국민의 생활 개선을 돕기 위한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런 봉사 활동을 통해 복음을 심는 선교적 목적을 품고 있었다.

이 기관의 책임자로 장 목사를 세웠다. 그는 방글라데시를 위해 사역하기를 원했지만 일정하고 확정된 사역이 없는 상황이라 비자문제에 자주 부딪히고 있었다. 장기 거주 비자를 얻지 못해 온 가족이 수시로 이웃 나라를 다녀오는 불편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런 기관이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승인만 받는다면 장 목사와 같은 사역자들이 문제없이 사역할 수 있게 된다. 이 일에 장 목사가 발벗고 나섰다.

방글라데시협회는 여섯 가지 활동 영역을 정했다. 첫째는 농업, 둘째는 교육, 셋째는 음악, 넷째는 봉제(縫製), 다섯째는 새마을운동,그리고 여섯째가 의료 영역이다. 여섯 개의 큰 활동 영역 중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의 눈길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새마을운동이었다.

 방글라데시는 우리의 새마을운동을 배우려고 이미 200여 명의 정부 관리들을 한국에 파견했고, 가져온 자료들을 토대로 분석하고 정리해 나름 의욕적으로 시도했다. 대표적인 모델이 그쵸그람이라는 마을이었는데, 의욕과 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우리가 제안한 프로젝트에 새마을운동이 있어서 그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기관의 승인을 받기 위한 수속 과정이 마무리되어가는 상태에서, 우리가 새마을운동을 펼치려고 마음먹은 찔마리 지역 군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장 목사와 간호사 한 명과 함께 먼 길을 가서 찔마리 군수를 만났다. 그는 모슬렘 정장 차림에 근엄한 자태로 우리를 깔보는 어투로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을 해보려고 많은 관리들이 한국을 다녀왔고 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실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소. 그런데 당신들 몇 사람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우리는 더욱 정성을 다해 대답했다.

“우리는 현지인에게만 맡겨두는 식으로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그 지역에서 함께 거주하면서 흙으로 벽돌도 만들고, 집도 짓고, 동시에 교육도 실시해나갈 것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모든 일에 우리가 함께 하겠다고 하자 군수는 쾌히 승낙해주었다. 하지만 작성한 계획서를 최고 결정기관에서 받아들이기까지 두 번이나 재수정을 해야 했다. 난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일을 다루는 의장의 비서가 장 목사에게 귀띔하기를 이 프로젝트 예산의 10퍼센트만 주면 당장 허가를 받도록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프로젝트는 5년 계획이라 예산이 꽤 많았다.

장 목사는 맥이 빠진 모습으로 저녁 모임에 계획서를 갖고 돌아왔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꼭 그래야 한다면 없던 일로 하기로 결정하고 그날 밤 새벽 2시까지 기도회를 가졌다. 다음날 장 목사가 다시 그 비서를 만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외국인으로서 당신들을 돕고자 애쓰고 있는데, 당신은 젊은 지성인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좋은 일을 한번 해볼 수 없겠습니까?”

그러자 그가 의외로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방글라데시에 한국인이 세운 KDAB라는 초교파 선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장 목사는 내친 김에 방글라데시 정부를 향해 KDAB소속의 선교사를 46명이나 요청했고 허락을 받아냈다. 기대 이상의 놀라운 결과였다. 이후 KDAB는 방글라데시를 위해 많은 사역을 감당하며 폭넓고 실제적인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귀한 단체로 쓰임받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새마을운동을 위해 특별히 애쓴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박사 출신으로 좋은 직장에서 생활하며 잘 살 수 있는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열악한 북쪽 찔마리에 왔다. 그들은 3천여 평의 땅을 놓고 우리와 함께 “이 땅을 주시옵소서” 하며 손에 손을 잡고 기도했는데, 그 땅이 결국 새마을운동 본부가 되었다. 원주민들이 손을 내저으며 안될 것이라던 농사도 잘되었다. 그 부부는 현지인 젊은이들과 숙식하면서 참으로 멋지게 열심히 사역했다.

1988년 대홍수가 일어나 잘 돌보았던 양어장의 물고기들이 다 떠내려갔고 농장과 새마을사업 본부까지 홍수가 휩쓸고 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복구가 되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부부는 인도 캘커타로 선교지를 옮겼는데, 이후에 남편 선교사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험한 지경까지 이른 몸으로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그들을 많이 사랑했고 기도해왔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금식기도를 잘 마치고 건강이 회복되어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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