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치매 환자끼리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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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위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더 천천히 읽으신 후에 다음 글로 시선을 옮겨주시길 바랍니다. 이 말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의 말입니다. 그녀는 1981년부터 25년간 진보(進步)와 보수(保守)가 서로 팽팽히 맞섰던 미국 대법원에서 ‘중도(中道)의 여왕’ 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법률적, 사회적 균형추(均衡錘)의 역할을 잘 수행했던 유명한 여성 대법관이었습니다. 

자신이 유방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대법관의 자리를 굳게 지켜왔던 오코너 여사는 당시 유명한 변호사였던 그녀의 남편 「존 오코너(John O’Connor)」가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려 증세가 심해지자 2005년 그녀의 명예로운 종신직인 대법관의 자리를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병든 남편 곁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은퇴를 결정한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50년 동안 보살펴주었으니 이젠 제가 당신을 보살펴드리라고 하나님이 이런 병을 당신에게 주신 겁니다.”

처음에는 남편을 차에 태우고 대법원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했지만 차츰 치매 증세가 심해지자 미련 없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다음은 오코너 여사의 독백입니다. “이제 우린 정상에서 내려올 시간입니다. 올라갈 때는 따로 따로 갈 때도 좀 있기는 했지만 내려올 때는 둘이 손잡고 잘 내려와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남편은 점점 더 기억력을 잃어가더니 마침내는 5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 ‘샌드라’ 마저도 몰라보는 중증(重症)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남편인 존을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침마다 요양병원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시간에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조차도 알아보질 못하던 남편이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다른 여성 치매환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낯 모르는 여자를 만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며 키스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샌드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다른 여자와 손잡고 산책하며 입을 맞추는 남편이 하나도 밉지 않았습니다. 아니, 밉기는 고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남편과 키스하는 그 여자에게도 질투나 미운 감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샌드라는 오히려 남편에게 행복과 웃음을 가져다주는 그 여자가 고마웠습니다. 애기 같은 그들을 볼 때마다 샌드라는 안심이 되었고 자신도 행복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샌드라의 아들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 같았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마침내 정서적 안정을 갖게 되었다고 너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항상 ‘죽음’만을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누군가를 좋아하시고 부터는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서 진짜 행복해지신 분은 엄마예요.”

지금의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샌드라의 사랑을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Mary Piph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어서 하는 사랑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사랑이고, 황혼이 되어서 하는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만 행복하다면 그때 본인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성숙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매가 찾아온다면, 크리스천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신앙상담자인 제 지인 한 사람은 평소 노인사역(老人事役)을 통해 어느 정도 치매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막상 엄마의 치매 판정 앞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한평생 신앙으로 살아오신 엄마에게 왜 치매가 찾아왔을까?” 하는 고통스런 질문이 밀려왔고, 치매를 하나님의 벌이나 죄로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 때문에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돌보면서 깨달은 것은 “치매에 걸린 성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치매나 여타(餘他)의 질병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성경은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치매환자에게도 절대적인 존엄성이 있음을 기억하고 사랑과 존중으로 돌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치매환자를 통해서도 영광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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