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오래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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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에 북반구 여러 곳에서 인류의 수명이 대략 15년 연장되었다는 통계수치가 제시되고 있는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살펴봐도 학교동창 등 동년배들이 자신의 기대수명을 90대 초반에 놓고 있음을 대화나 행동을 통해 감지한다. 물론 현재의 건강에 자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정도의 수명을 누리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어렵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주 교회 주일예배에서 담임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이 나를 포함한 나이든 교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유대왕국 히스기야 왕은 중병이 들어 수명이 다했음을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들어 알게 되자 하나님께 기도해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는 은혜를 입었다. 성경은 그렇게 얻은 15년 동안에 히스기야 왕이 무슨 선한 일을 했는가 적시하는 대신에 두가지 행적만을 전해주는데 그 하나는 바벨론 사절에게 나라의 창고를 열어 귀한 보물들과 무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보여주어 후일의 침략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기간에 아들 므낫세를 낳아서 그가 12살 어린 나이에 부왕의 죽음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교회 주일학교 교재가 분류하는 대로 히스기야는 몇 안되는 선한 왕들 가운데에서도 위쪽에 드는 반면에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조를 통틀어서 가장 긴 55년 간 왕위에 있었던 므낫세는 온 통치기간을 우상숭배를 비롯한 악정과 악행으로 채워 최악의 통치자라는 오명을 남겼다. 긍휼하신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생명연장의 큰 선물을 주셨는데 그 은총을 입은 왕은 마땅히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아들을 낳아 유다왕국의 멸망을 재촉했으니 역사에 대한 그의 책임은 막중하다. 스스로 자식을 더 잘 훈육했어야 하고 하다못해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선생이 있었듯이 어린 므낫세에게 훌륭한 교사를 붙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크다. 

하나같이 장수를 원하고, 오래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오래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인간들에게 히스기야의 사례는 준엄한 명제를 던져준다.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15년이건 얼마 건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 길어진 시간을 우리가 얼마나 선하게 쓰다가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이 그저 오래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선물은 아무 뜻도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설교의 요지는 듣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오늘 통계수치를 두렵게 만드는 쪽에 속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세상의 근심을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성찰로 이끈다. 

노인들의 건망증과 인지장애를 소재로 한 농담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실제로 사회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인사들이 세상사람들로부터 노망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언행을 저지르는 사례들을 본다. 이런 분들에게는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깨달아 스스로 자제하기를 촉구하는데, 여전히 넓고 깊은 경륜으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선하고 바른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겸손한 인격의 소유자들도 많다.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하나님 앞과 세상에서 스스로 증명하며 노년을 사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히스기야 왕의 실패를 피하는 길이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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