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인생의 목자이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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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회적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관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도 관계다. 하나님과 나, 신랑과 신부 그리고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 모든 관계 자체가 믿음이다. 다윗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인생을 설명했다. 양은 연약한 존재다. 목자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시편 100편 3절에 성도는 그가 기르시는 양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애를 쓴다.(창 3장) 그런 인간에게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통해 당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란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짐이라고 했다. 양처럼 연약하지만 그를 의지해 온전해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1절에 다윗은 나의 목자라 고백한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목자가 되셨음을 그는 너무나 잘 알았다. 우리아 아내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의 지적 앞에 그는 바로 엎드려 긍휼을 구했다.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윗의 승리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실패와 넘어짐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이루어졌었다.

내가 강릉에 처음 와서 받은 말씀이 시편 18편 1절이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내가 사랑하나이다. 그렇다. 인생에서 그만이 나의 진정한 힘이 되었음을 경험했다면 그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가 나의 힘이라 함은 이제부터 우선순위가 그에게 있다는 것이요(마 6:33) 이제 하나님만 생각하겠다는 결단이다. 왜냐하면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신 것처럼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생각은 그에게 집중되어간다. 불평은 환경으로 인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에서 왔던 것이다. 그를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신념적인 삶에서는 불안, 불평 그리고 두려움 밖에 기다릴 것이 없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김 당할 때 시편 23편을 기록했다. 다윗은 왕 중의 왕이요, 가진 자 중에 가진 자요, 누린 자 중의 누린 자였지만 그의 생애는 고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고난을 통해 새로운 장을 써 나갔다. 1절에 그런 상황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고통 없는 유유자적한 삶이 결코 아니다. 다윗은 실제 목자였기에 목자와 양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목마름, 수많은 적, 더위와 추위 속에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목자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윗은 가장으로써 삶도 사울의 딸, 밧세바, 아비가일 그리고 자식의 반역 등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왕이 되기까지 13년 시간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왕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본보기가 되었지만, 본인으로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4절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던 것은 주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매 순간 절감했기에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겼기에 그의 모든 소원을 들어 주셨던 것이다.(시 10:17) 하나님은 지금도 겸손한 자를 구원할 뿐 아니라 모든 소원을 들어주심으로(욥 22:29) 부족하지 않고 사망 가운데서도 안위함을 허락해 주신다. 

특이한 것은 2절과 3절에 인도하신다는 내용이 연달아 나온다. 목자는 양을 최선의 장소로 인도하는 일이 최우선적이다. 더욱이 푸른 풀밭이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는 것은 양에게는 최선의 장소다. 주님은 죄인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초대하신다. 하지만 죄인들은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모른다. 그 길은 의의 길이다.(3절) 똑바르고 넓고 좋은 길이 아닌 의의 길이다. 의의 길은 겉으로 볼 때는 좋은 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양에게 의의 길은 가장 완전한 길이다. 어떤 길이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이다(잠 14:12) 라는 말씀처럼 사람 눈에는 진학, 취직, 결혼, 사업, 자식 농사에서 실패했다 해도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 주님께 인도하시는 의의 길이라면 결코 실패가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가. 바로 자기 이름을 위해서(시 23:36)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일에 성공자는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귀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주의 이름 안에 모든 약속이 있고, 실제로 그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인생 최대 미션은 인생의 목자를 누구로 삼느냐에 있다. 다윗처럼 주님이 내 인생목자가 되신다면 주님은 나의 힘이요 내게 부족함이 없도록 만족한 인생이 이어지면 그리고 친히 의의 길로 인도함 받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한억만 목사

<강릉하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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