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설립 112주년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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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올해는 총회 설립 112주년, 한미수호통상조약 142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호통상조약은 이름 그대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통상조약이었다. 

하나님은 신묘막측하게도 서양의 동양 진출이라는 이기적인 물결을 타고 이 땅에 선교사들을 보내주셨다.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에 발을 들이기 1년 전 의료 선교사 알렌이 이 땅을 찾아온다. 

입국하자마자 갑신정변으로 큰 상처를 입고 사선을 넘고 있던 황후의 친척 민영환을 살리는 의학적 쾌거를 이룬다. 이 일로 왕실의 신임을 얻어 알렌은 벼슬을 얻고 한국 최초의 병원 광혜원(제중원)을 세우게 된다.

제중원은 선교사들과 정부가 함께 운영하던 병원이었다. 제중원은 선교사님들의 전통을 이어 세브란스 병원이 되고 정부의 전통을 이어받아 서울대학병원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 서울대학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서로 자신들이 제중원의 후예라고 주장할 때가 있지만 사실은 두 병원 다 제중원의 후예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병원 보구여관의 2대 원장이 로제타 홀 선교사이다. 남편 의사를 따라서 한국에 왔다가 아이 한 명을 낳고 유복녀를 남겨두고 사역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별을 한다. 로제타 홀은 본국에 돌아가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돌아와서 보구여관을 섬기고 여성들을 훈련해서 의사로 만들기 위해 여성 의학교를 세우게 된다. 보구여관은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여성 의학교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세계열강들로부터 버림받고 일제 강점기로 빨려들던 암울한 시대, 선교사님들이 물밀듯이 이 땅을 찾아온다.

언더우드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지 선교 22년 만에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일어나고 바로 그 해 선교사님들이 복음 전도를 한국인의 손에 넘기는 독노회가 설립된다. 일제 강점 2년 후 드디어 7명의 평양신학교 졸업생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1912년 언더우드를 제1회 총회장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9월 1일 설립되었다. 그래서 금년 총회는 112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총회는 매년 9월 첫째 주일을 총회설립 기념 감사주일로 지키고 있다. 

국권을 잃어버리고 모든 국가 조직을 빼앗겼을 때 우리 총회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이 백성들을 돌보고 있었다. 전국의 교회들이 있었으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든 안 나오는 사람이든 나라 잃은 민초들을 돌보고 섬길 수가 있었다. 이 총회 조직과 전국에 선교사님들에 의해 세워진 수백 기독교학교들을 통해서 3.1운동, 독립 운동이 가능했다. 해방과 함께 총회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 헌신할 수 있었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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