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간질병 환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싼 대변을 집어먹는 정신박약아들과 가위를 들고 찔러 죽이겠다고 날뛰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난동 앞에서 나는 도저히 배겨날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제비나 국수를 주변 힘센 사람들은 약한 사람 몫의 반을 빼앗아 가기가 일쑤였다.
200명을 통솔해 나가는 어느 선생님은 자신도 발작을 했는지 기분 나쁘다고 방망이로 인정사정없이 원생들을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에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아,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은 못 된다’는 판단이 서자 도망쳐 달아나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도 더 불쌍한 전쟁 고아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천애원의 고달픈 삶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은 큰 다행이요,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고 자학하며 세상을 비관하기에는 너무나도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력을 소유한 자임을 스스로 자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내가 인생의 광야길에서 수많은 경험들을 겪어 왔기에 오늘날과 같은 삶의 지표와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원리가 무엇인가? 가난하고 병든 자와 억울한 자들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무릇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수많은 봉사자들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시대의 첨병으로서 운명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천애원 탈출 작전
어느 날 오른발에 관통상을 입은 김정운이란 친구와 함께 몰래 천애원을 빠져나가 도망치자고 약속했다. 여기 있다가는 언제 어느 시간에 우리도 더 큰 장애자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도망할 모의는 했지만 정작 어디로 달아날 것인가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우리들은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춘천으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곳은 미군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어 쉽사리 구걸하기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군 병사들은 우리와 같은 천애 고아들에게 둘도 없이 다정한 친구였다고 생각된다.
춘천으로 가서 또다시 거지생활을 하려고 결심한 그날 밤 눈먼 왕자거지와 절뚝발이 거지왕자는 몰래 천애원을 빠져나와 먼 곳으로 도망쳤다. 서울 근교는 다시 붙잡힐까봐 안전한 곳이 못된다고 판단한 우리는 때마침 춘천으로 가는 미군용 트럭에 올라타고 그날 밤 도주에 성공했던 것이다.
몇 시간 뒤, 춘천 가기 전 초소에서 검문이 있었다. 춘천을 가려면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어떠한 증명서도 없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무척 추웠다. 우리를 트럭에 태워 준 미군 병사는 우리를 초소에 데리고 들어가 언 몸을 녹여 주고 따뜻한 초콜릿 우유를 한잔 마시게 한 뒤 다시 서울로 갈 수 있도록 한국 병사에게 트럭에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원하던 춘천으로는 가지 못하고 또 다시 미군용 트럭에 태워져 새벽에 용산역 근처에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 온 미군 병사는 친절하게 몇 푼의 달러와 먹을 것을 주었다. 우리는 그 길로 용산역으로 가서 부산행 완행 열차표를 구입해서 부산역으로 향했다.
나의 짧은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험난한지 기나긴 광야생활 그 어느 곳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하신 목자를 향한 기도를 쉬지 않았다.
거지 왕국의 왕자거지
6.25전쟁이 내게 준 선물은 거지의 삶이었다. 인생의 한계상황은 바로 죽음과 질병과 배고픔과 같은 공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계상황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일만은 아니다. 거지의 삶 속에도 행복한 계절이 없으란 법은 없다.
거지에게 가장 좋은 계절은 봄과 여름이다. 여름철은 거지에게 지상천국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무덥긴 하지만 어디서든지 앉아서 쉴 수 있고 누워서 잘 수가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여름철은 모든 것이 나의 집이요, 삶의 터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놀고, 쉬고, 자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계절이 곧 여름이기 때문이다.
거지에게는 통행제한이나 기본투자가 필요없다. 어딜 가든지 깡통과 손만 내밀면 무엇이든지 받게 된다. 냉대를 받거나 대접을 받거나 축복이 된다. 거지의 삶은 참으로 낙천적일 때가 있다. 배를 채운 뒤에는 그저 강가나 다리 밑이나 들판 어디든지 가서 쉬면서 모든 것은 나의 소유처럼 삶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이다. 그러나 항상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파라다이스만은 아닌 것이 또한 거지의 삶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