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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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바꾼 신앙과 경영의 결단

여름 의류 원단의 경쟁력으로 어음 위기 돌파

두려움 이겨내고 장로로서의 원칙 경영에 적용

원단 업계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주저하거나 관망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매일같이 어음이 돌아오고 있으니, 어차피 가만히 서 있으면 죽는 길로 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위험한 시도라 해도 죽기 살기로 뛰어들어야 했다. 마침 우리 회사는 패션 의류용 원단 중에서도 여름 의류 원단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원단 디자인과 품질에 있어서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패션 회사들에 적극적으로 제품을 권했고, 밀려드는 주문을 대부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수십 곳의 거래 공장들을 3교대 24시간으로 풀가동시켜 주문받은 제품을 생산해냈다.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던 직물, 제직, 염색, 가공 공장들까지도 정신없이 돌아갔다. 한때 부담이 됐던 부도난 김 회장 사업체의 여러 네트워크들이 이때는 다시 큰 자산으로 작용했다. 아마 지금과 같은 경제구조였다면 코스닥에 상장해서 ‘대박’을 맞을 수도 있을 만한 기회였다.

이렇게 일이 돌아가자 어음 돌아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한 번도 재연장하지 않고 모든 어음을 돌아오는 족족 막았다. 딱 1년 만에 부도 위기 이전의 재정 상태를 회복했고 매출은 이전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던 중 소망교회 건축헌금을 작정했던 날이 돌아왔다. 1년 전 작정했던 그 금액대로, 하루도 날짜를 어기지 않고 헌금을 낼 수 있었다. 헌금을 내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만일 내가 부도 위기에서 야반도주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때 몸을 피했던 김 회장은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지내다가 질병을 얻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아마 나도 그렇게 교회도 사업도 등지고 살아가야 했으리라. 예수님 때문에 도망갈 수 없었던 덕에 바로 설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축복을 받았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기 때문이다. 막막하고 판단이 서지 않아 헤매던 내게 하나님 방법과 세상 방법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하는 것이 내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이후의 내 삶에서 하나의 기준이 됐다. 늘 궁금했지만 분명하게 구분해내지 못했던 ‘기독 경영’의 기준을 분명하게 세워주신 것이다. 절체절명의 다급한 순간일수록 변칙을 취하기보다는 정직한 쪽으로 택해야 한다는 선한 분별력을 주셨다. ‘위기일수록 정도를 찾아야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하신 것이다. 이 원칙은 결과적으로 신뢰를 낳았고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됐다.

‘기독 경영’을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내게 그 길을 분명히 보여주셨고, 그 길로 가게 하셨다는 것이 감사하다. 무엇보다 경험으로 깨달았기에 나는 그 뒤로도 늘 주저하지 않고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기업경영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모든 사건에서 선택의 문제인데 장로 직분은 늘 하나님의 기준을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했다. 그 잠깐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실족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장로로서 산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만 그렇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일하고 살아가면서도 내내 ‘나는 장로다’라고 자각한다는 의미다. 물론 종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의 방식대로만 살기는 어렵다. 특히 직장생활이나 사업 관계에서 유흥문화 소비를 당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혼자서 절제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럴수록 ‘나는 장로’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놓아야 한다. 광대가 광대탈을 쓰면 탈 속에서 마음껏 신명 나게 광대놀이를 놀 수 있는 것처럼, 장로의 탈을 쓰면 장로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주저함 없이 장로의 선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나도 장로가 되기 전까지는 사업상 사람들을 만날 때 술자리에 동석을 했다. 그래서 뜻밖에 장로로 피택되자 당황스럽고 부담이 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공부하고 노회 장로고시에 합격하는 과정을 거치며 마음 속에 어떤 결심이 떠올랐다.

1981년 11월 15일, 소망교회가 예배당을 신축해서 이전의 상가교회를 떠나 입당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이날 나를 비롯한 9명의 1기(초대) 장로 장립식도 열렸다. 나는 사업상 거래하는 협력업체 사람들을 모두 이 자리에 초대했다. 축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교회 장로입니다”라고 선포하는 의미였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일부러 더 적극적으로 초청했다. 그 결과, 업계에는 내가 장로라는 사실이 다 소문났다. 그 덕분에 회식 자리에서도 술을 권하는 이가 없었다. 고맙게도 처음부터 “맥주 몇 병, 소주 몇 병, 콜라 한 병” 이렇게 주문을 하고 내 앞에는 콜라를 놓아주었다. 장로 대접을 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제는 굴레가 아니다. 내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만족하도록 채워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그 속에서, 나는 ‘기독 경영인’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두려움이 너무 크게 보이면 

실패한다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이기는 훈련이다. 일본의 ‘내셔널(National) 전기’를 창업한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94세까지 경영 일선에서 일하면서 570개의 기업, 13만 명의 사원을 거느렸다. 그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업을 하면서 어떤 위기의 사건이 생겼을 때, ‘첫째, 이 일로 내가 죽느냐? 둘째, 내가 감옥에 가느냐? 셋째, 내가 망하느냐? 넷째, 명예가 손상되느냐? 다섯째, 손해를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일로 내가 죽지는 않는다, 감옥에는 안 간다, 망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3분의 여유를 가지면 마음에 평정을 찾을 수 있다. 평정심을 갖게 되면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 이미 그 위기는 작게 보인다. 위기 극복 프로젝트의 엔진이 가동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나중에 읽은 것이지만 나도 한창 사업을 하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여유를 찾곤 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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