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면서 외국으로부터 많은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로 ‘빨리빨리’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세계에서 알아주듯 한국인은 무슨 일이든 빨리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기에 일제에 억눌려 살던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6.25동란을 겪은 지 70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세계의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우리 국민성을 비웃거나 따져보기 전에 내가 속한 사회가 그러했기에 나도 이런 기류에 휩쓸려 바쁜 생활을 해 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다는 옛말을 증명하듯 나이가 들어가면서 행동이 굼뜨고, 말도 느려지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예전과는 달리 영민하지 못함을 자각하게 되면서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이에 현명한 대처를 해야겠다고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어느 영국 신문사에서 독자들에게 창간 기념일을 맞아 가벼운 퀴즈를 냈다. 문제는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가장 뻐른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넌센스 퀴즈 같은 문제였다. 얼마 후에 문제에 대한 정답을 발표했는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웃음의 박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사실 연인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게 빨리 지나가는 반면에 무섭고 재미없는 직장 상사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그리도 더디게 지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빨리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시험이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을 지녔지만 막상 성장해서 시험이 없는 세상에서 지내면, 그래도 시험 보면서 학생으로 보냈던 시절이 가장 꿈 많던 낭만의 시절이었던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이 경험하는 평범한 인생인 것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임박해 집 앞에서 눈 길에 미끄러져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내 일생에서 처음으로 고요한 성탄절 밤을 병실에서 보내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완쾌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신세가 되면서, 나의 노년기의 생활 패턴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물론 활발한 외부 활동은 할 수 없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조심하면서 외출하는 일은 가능했다. 지팡이를 이용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양보를 받는 혜택도 있고,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외출할 때에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에 주위 사람이 나를 배려해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습관을 길렀다. 특히 서울의 지하철은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세계에서 가장 청결하고, 빠르며 안전하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이다. 그리고 내가 환자가 된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나 같은 신체약자를 위해 엘리베이터 같은 편리한 기구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사용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는 노인이 되었기에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어려움이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음이 고마울 뿐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말이나 행동은 느려지면서도 느끼는 감정은 예민해질 수 있음은 조심할 일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여유 있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림과 빠름이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천천히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